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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 하나..

내가 초등학교 때, 아버지는 소방공무원을 그만두시고 간척지에 땅을 사서 농사를 지으러 내려가셨다. 결국 난 학교는 서울에서 다니고, 방학만 되면 시골에 가서 농촌생활을 하게 되는 청소년 시절을 보내게 되었는데...

시골에 가보니 경운기라는, 당시로서는 꽤나 신식인 기계가 있는게 아닌가.

나름대로 고생스러운 농사일에 경운기라도 없으면 그 넓은 땅에 농사짓기가 불가능 한 것이지만, 경운기에 얽힌 추억이라면.. 단연 그 시커멓고 무서운 폐유다.

모든 내연기관이 다 그렇지만, 엔진블록 속에 피스톤의 움직임을 원활히 하기 위한 윤활유를 넣게 되고 시간이 지나면 이 윤활유는 시커멓게 타고 변질되어 폐유가 된다. 정기적인 엔진 점검때는 이 윤활유(흔히 오일로 부른다.)를 갈아 줘야 하는데..

정비소가 따로 있을리가 없는 시골에서 새 오일을 사다가 폐유를 빼고 나서 넣어주면, 덩그라니 폐유만 한통이 남게 된다. 이 양도 적은게 아니다.

문제는, 그 시커먼 폐유를 처리할 방법이 전혀 없다는 것이었다. 소방관 출신이신 아버님은 결국, 이 문제를 근본적으로 처리하기 위하여 동네사람들을 설득해서 폐유 집하장을 만들고, 거기에 동네 전부의 폐유를 모두 모아 두었다가 돈 주고 처리하는 것으로 해결을 보셨다. 그 과정에서 돈이 아까운 마을 분들과 싸우기도 하셨던 기억이 난다.

어린 내 눈에도 그게 무척 신기해 보였다. 그냥 어디 쓰레기장이나 아니면 땅파고 부어버리면 되는거 아닌가 싶었기 때문이다.

그냥 버리면 안되냐는 멍청한 내 질문에 돌아온 아버지의 답변은 아직도 내 머리속에 생생하다.

"내가 농사 그만 둘 때까지 생긴 폐유만 땅에 버려도 넌 이 땅에서 나오는 물 한모금도 마실 수 없을거다. 큰일날 소리는 하지도 말거라."

어지간한 농가 집집마다 폐유 저장통이 다 있고, 정기적으로 수거해 가는 요즘엔 상상하기 힘든 추억이다.




기억 둘..

젊은 시절, 무작정 여기저기 쏘다니기를 좋아하던 내가 학암포에 가게 된 것은 그야말로 우연한 일이었다. 서산에서 태안을 가보려고 탄 버스에서 잠이 들어 깨보니, 학암포 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태안을 지나서 한참 더 들어가 버린 것이겠지만, 해도 져가는데, 덜컥 겁이 나기까지 했었다.

그래서 학암포가 눈에 들어오지도 않았고, 길을 따라 무작정 걸어 나오면서 얻어타기라도 해야 겠다고 맘먹고 터덜터덜 걸어오는데..

무슨 생각에서인지 갑자기 신두 사구쪽으로 길을 접어든 것이었다.

그 때, 갑자기 시공을 넘어 지구 반대편 어딘가의 사막에 내동댕이 쳐진듯, 우리나라에 이런 멋진 곳이 있었나 싶은 광경이 눈앞에 펼쳐졌다.

깨끗하고 단단한 모래밭이 광활하게 펼쳐져 있고 여기저기 솟아 오른 모래언덕들, 군데군데 자라는 나무와 풀..

주변에 인가라고는 하나도 보이지 않는 그곳에 휘몰아 치는 바다바람 속에 석양은 붉게 물들어가고, 나는 들고 다니던 낡은 옷가방을 던져놓고 주위가 완전히 깜깜해질 때 까지 시간 가는줄 모르고 하염없이 앉아 있을 수 밖에 없었다.

그 밤에 하늘에 별은 또 왜 그렇게 많던지..

결국 한참이나 걸어 나와서야 길가에 낡은 가게집을 하나 발견했고, 사정 얘기를 한후, 밥한그릇과 잠자리를 구할 수 있었다.

다음날 아침에 길을 떠나기 전에 다시 가본 밝은 아침의 신두 해안은 또 다른 아름다움이 있었다. 거기서 난 자연경관이 사람의 정신에 어떤 영향을 주는지를 그렇게 몸소 체험했던 기억이 있다.

그게 신두사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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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그런 추억들은 내 속에 어딘가에 모여서 지금의 나를 구성하고 있는 것이다.

그 후로도 몇번이나 신두 사구를 가봤지만, 점점 더 늘어가는 집들과, 줄어드는 모래언덕들, 늘어나는 아카시아 나무들, 줄어가는 아름다움들..

그래도 일이 있거나 낚시를 가거나 할 때 마다 근처를 지나치게 되면 꼭 일부러라도 들러서 시간을 보내고 오는 신두사구는 그렇게 내 마음속에 남아 있었는데..



그 신두사구가 시커먼 원유밭이 되었다고 한다.


그것도 어쩔 수 없는 천재지변도 아닌, 부주의하고 게으른 인간들의 잘못으로 말미암아서 말이다.

그게 해양경찰의 잘못인지, 해양수산부의 잘못인지, 삼성중공업의 잘못인지 따져볼 기운도 없다.

그 맑은 태안의 바닷물속에서 우리가 먹을 먹거리를 길러 내어 삶을 이어가는 그 많은 어민들은 도대체 어쩌라는 얘기인가 말이다.

그 끔찍한, 다만 몇리터 나온 것만으로도 호들갑을 떨면서 마을사람들이 모여 폐유 집하장을 만들고 모아서 처리하던 그 끔찍한 기억속의 폐유 같은 것들이, 내 추억속에 가장 아름다운 부분을 장식하고 있던 것들을 송두리째 파괴해 버렸다.

송두리째 삶의 터전을 파괴당한 어민들 앞에서 내 얘기는 배부른 소리 맞다.

신두 사구의 해안을 4-50미터의 폭으로 몇십키로에 걸쳐 뒤덮은 그 검은 기름띠가 새하얀 백사장을 송두리째 파괴한 모습을 멀리서 사진으로만 보고도 이렇게 절망스러운데, 바로 거기가 삶의 유일한 터전이었던 사람들이 느껴야 하는 절망감은 도대체 누가 책임을 져야 하는 것일까..


이래서는 정말 안된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인도새 알바가 직접 찍어온 신두 해변의 모습>






물뚝심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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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이 글은, 원저자의 동의하에, 별도로 편집,게재된 글입니다. 불법적인 펌글이나 스크랩이 절대 아님을 밝히는 바이오니, 오해 없으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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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indiabird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사진 맘대로 쓰셔도 됩니다~
    카피레프트?

    2007/12/10 20: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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