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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지님의 글에 댓글로 올렸는데 조금 첨가해서 정식 답글로 씁니다. 외람된 얘기인지 모르겠지만, 잠시 제 얘기를 하겠습니다. 저는1981 년도에  경제학 전공으로 대학에 입학을 했으나, 3 학년때 부터 본격적으로 수학과목을 수강해서인지 졸업에 임박해서는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수학 수업은 어느 정도 들었다고 생각했습니다.
제가 수학을 본격적으로 접한 것은 결혼 후 유학시절 부터 였습니다.

학부 전공이었던 경제학 보다 좋은 조건으로 입학 허가서를 받을 수 있었고, 졸업전 이미 마음이 떠나버린 경제 보다 , 비록 보잘것 없는Background 를 가졌지만 의욕 만큼은 뒤지지 않는다고 생각해서 약간의 무리는 있었지만 곧바로 석박사 통합 과정으로 위스컨신 대학 수학과 대학원에서 강사겸 학생으로 수학 공부를 시작 했습니다.

결혼 후 만으로 26 살에 적지 않은 기대 속에 유학생활을 시작했으나 첫 학기만에 수학이란 학문이 내가 생각했던 것 보다 훨씬 더 어려운걸 깨닫고 능력 부족을 몸으로 실감하여 장래에 대한 회의와 번민으로 힘든 나날을 보냈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합니다. 만일 그당시 내가 미혼이었거나 아니면 전공을 바꾼 전과(?)가 없었다면, 아마도 첫학기에 곧바로 유학 생활을 포기했을지도 모를 정도의 상황이었습니다.

한학기가 지나서 수학중에서 전공을 선택해야 할 때에 또 한번의 고비가 있었습니다. 해석학은 정말 끔찍했고, 위상수학과 기하는 매력이 있었지만 내 능력의 한계를 실감해서 부모님과 조상을 원망하는 맘으로 일찌감치 전공에서 제외했고, 대수학은 그런대로 해볼만 한 것 같았지만 덤벙대는 내 성격에는 어울리지 않는다는 충고에 공감해서 그야말로 수학과 대학원생은 맞지만 전공의 고아가 되기 직전이었습니다.

이런식으로 첫 학기를 마치고나니까 거의 탈진 상태여서 방학때 부족한 부분을 만회하겠다는 계획을 세우기만 했지 본 마음은 마냥 쉬고만 싶었습니다. 해석학 2 학기 내용은 복소수 함수인데, 어느정도 지식을 가지고 공부한 일학기 실해석학도 무진 고생을 했는데, 이전까지 한번도 접해보지 않은 복소함수는 시작 전부터 두려움이 앞서서 교재 대신에, 선배들 모두가 좋은 책이라고 추천하는 학부생용 Silverman 책으로 미리 공부하기로 했습니다.

그때가 처음인지, 아니면 예전에 본 적이 있었는데 주의를 기울이지 않았던건지 몰라도 복소수의 실수부를 영어로 real part, 허수부를 imaginary part 라고 부르는 것에 갑자기 몸에서 전기가 통하는 듯한 느낌을 받았습니다.

사람은 꿈을 먹고 산다고 하지만, 내 삶에서 상상의 부분 즉 (imaginary part) 가 차지하는 비중이 다른 사람보다 유난히 크다는걸 아주 어릴적부터 느꼈었고, 소설과 영화를 보면서 그 속으로 빠져들어 내 삶의 실제부분 즉 real part 에서 가질 수 없었던 그 모든 것 들을 바로 상상속에서 경험하곤 했습니다.

이런 식으로 영원한 이상주의자로 남고 싶었던 나에게 복소수가 real part 와 imaginary part 로 나누어졌다는 새로운 발견은 마땅한 전공을 찾지 못했던 것에 대한 합리화인지 몰라도, 정작 그 과목의 공부를 시작하기도 전에 커다란 애정을 갖게 하였습니다.

학기가 시작되고 수업을 들으면서 정말이지 복소함수의 성질이 전에 막연히 생각했던 것과 엄청나게 다른걸 실감했으며 그중에서 학기 후반부에 접하게 된 Riemann mapping theorem 은 나 자신을 수학의 늪에 빠지게 만들 정도로 화려하고 아름다운 정리였다고 생각합니다. (결국 복소함수는 제 전공이 되고 말았지요.)

제가 수학을 택한 가장 큰 동기는 (그 당시에 내게 별 개념이 없었던 연구 보다) 인간적이고 좋은 수학 선생님이 꼭 되어보고 싶어서 였습니다.

수학을 전공한 후 저의 첫번째 다짐은, "수학이라는 절대 진리를 탐구하고자 하는 사람으로서 항상 진실만을 이야기하자" 였습니다. 나름대로 대단한 각오였지만 상황을 안 가리고 매사에 무턱대고 솔직하기만 한 것은 득 보다 실이 많은 것을 그 후로 깨닫기도 했습니다.

수학을 본격적으로 접하고 처음 뼈저리게 느낀 것은 자기 합리화에 가까운 핑계 같지만 이 학문이야 말로 완전히 서양 학문이고 어쩌면 우리의 정서에 맞지 않는다는 생각이었습니다. 옛 부터 뭐든지 꼼꼼히 따지는 것 보다 인정에 약하고, 문제가 생겨도 술 한잔 마시고 얼룰 맞대며 가급적 서로 이해하려고 하는 우리의 전통 문화와는 조금 다를 정로도 사소한 것에도 엄밀하고 매정한것이 수학이란 것이구나 하고 느꼈습니다. (실제로 세계 수학계는 유태인이 완전히 장악하고 있고 흑인 수학자는 세계적으로도 미국에도 거의 없습니다)

두각을 나타내고 싶었던 내 바램은 첫학기에 무참히 깨어지고, 두각은 커녕 자격 시험에서 살아남는 것이 나의 일차 목표가 될 정도로 첫 학기는 고생의 연속이었으나, 곧 바로 다음학기에 정신도 차리고 좋아하는 과목도 만들어서 정말 수학공부 하는 유학생 다운 면모를 갖춰 나갔습니다.

그 당시의 복소함수론은 어쩌면 내가 나이들어 처음 접하는 이론인 만큼 학부 시절 처럼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이지 않고,하나 하나의 정리와 이론들을 음미할 수 있었기에 복소함수의 아름다움을 몸으로 실감할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정말이지 그 학기는 내가 몸이 상할 정도로 수학공부에 몰두했고 그때 깨달은 것 중 하나가 너무 공부에 몰두를 하게되면 휴식을 취하고 싶어도 머리에 남아있는 그 잔상때문에 잠자는것 조차 힘들수가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이 때는 대가로 불리는 수학자에게 인정도 받았고 동료 대학원생 밎, 유학생들로부터도 어느정도 수학의 재능이 있다는 얘기도 들을 정도가 되었으나 , 그것도 잠시일 뿐 곧바로 몸이 크게 상해서 그 후로 일년 동안을 휴학하고 병원 신세를 져야 했습니다. 그 뒤로 지금까지 그때 당시 처럼의 집중을 하지 못하고 있지만, 그 당시의 경험이 바탕이 되어서 내 앞에 닥치는 어떤 것이든 크게 두려워 하지 않는 자신감도 갖게 되었다고 보여집니다.

유학 첫해에 힘들었던 이유 중 가장 큰 것은 단연 나의 부족한 수학적 배경이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때때로 대학원 동료들 앞에서 그들이 나의 부족한 수학적 배경을 이해해 주길 바라는 투정도 부렸습니다. 그런 나에게 내 평생 가장 가슴에 사무치는 질타가 연구실 선배로부터 들려왔습니다. Tom 이라는 졸업을 앞둔 동갑내기 친구였는데 그의 말의 핵심은 "수학을 공부하는 대학원생은 프로페셔널인데 어떻게 자기 전공을 모른다고 공공연히 변명을 할 수 있느냐, 네가 모른다면 혼자 고민해서 알든, 남에게 물어서 알든 알려고 노력만 해라, 안 배워서 모른다는 것은 수치이지 자랑거리가 절대 아니다, 프로는 자신의 약점을 꾸준히 보완할 뿐이지 결코 남에게 드러내면서 투정하지 않는다. 어느 야구선수가 자기는 야구를 못한다고 하는 것 봤느냐" 는 것이었습니다.

처음에는 그 말이 비수처럼 가슴을 찔렀지만, 지난 후에 돌이키건데 내가 이 말 때문에 Tom에게 진 신세는 평생 갚으면서 살아도 모자랄거란 생각입니다. 그의 말 대로 모른다는 것은 변명이 될 수가 없다는 것을 깨닫고 그 이후로 내가 모르는 것은 정직하고 겸손하게 인정하면서 결국은 그 것을 알려고 하는 부단한 노력을 기울이려 하고 있습니다

수학 공부를 하면서 얻어지는 장점중의 하나는 나 자신이 정직하고 투명해진다는 것입니다.
Open mind 가 되어서 동료와 수학 문제에 대해서 토론을 하면, 상대가 누구이든 언제나 많은 것들을 얻습니다. 혼자 생각하면 쏟는 시간에 관계 없이 다람쥐 쳇바퀴 돌듯이 같은 생각을 반복하기 쉬우나 , 동료와의 토론은 사고의 방향이나 깊이를 내가 미처 생각 못한 영역까지 넓히고 높여줍니다. 서로의 억지 주장은 절로 사라지게 되고, 열린 마음의 겸손함은 자신을 뿌듯하게 해 줍니다. 다른 사람 앞에서 논리적으로 설명하는 방법도 자연스럽게 익혀 나가게 됩니다.

수학이란 학문은 보통 사람이 생각하는 것 보다 훨씬 깊은 사고력을 필요로 합니다. 깊다는 것은 지속적이고 외골수 적인 사고를 필요로 하는 경우가 많아서 자칫하면 혼자의 세계, 아니면 몇몇 동료들과만 공유하는 폭 좁은 세계에 갇히기도 쉽습니다.

이런 현상은 분명 긍적적인 것만은 아니고, 이로 인해 수학자들이 빠지기 쉬운 함정 및 불완전성도 쉽게 찾을 수 있습니다. 단적인 예로 수학자들의 대인관계에서 개개인의 태도는 그가 수학적으로 차지하는 비중에 좌우되기도 합니다. 많은 경우 저명한 수학자일수록 그 자신만만하고 배타적인 태도로 인해 접근하기가 힘들고, 스스로 실력이 대단치 않다고 생각하는 수학자일수록 태도가 소탈해집니다. 수학자들의 사회도 평등한 사회는 아니지요

위의 글은 내가 학창 시절에 몸으로 느낀 것으로서, 타 이공계들에게도 어느정도 시사하는 바가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으로 쓴 것입니다. 모름지기 수학을 전공하는 학생이라면 학부 시절부터 여러가지 사물 및 현상을 사고적, 체계적으로 이해하는 것에 익숙할 것이라고 여겨집니다.

서구 선진국에서 수학자의 위치는 과장없이 말해서 '사회의 마지막 지성적 보루' 로 여겨집니다. 미국에서는 해마다 벌어지는 범죄나 미지의 사건들이 끝내 미궁으로 빠지면 최후에는 수학자에게 의지하곤 하는것을 직접 미디어를 통해서 목격했고, 동부지역의 유명 사립대에서 행해진 연구에 의하면 기계나 로봇을 조립하는것이 주요 생활인 공대 대학원생과 이런것에 전혀 문외한인 수학과 대학원생에게 서로가 처음 접하는 복잡한 입체 모형을 매뉴얼 책자를 따라가면서 조립하도록 시킨 결과 수학 전공생들이 더 정확한 모형을 만들었다는 내용의 뉴스도 들었던 기억이 납니다.

지금 쓰는 댓글에서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얘기는, 내가 직접 수업을 하면서 느낀 것인데, 수학시험을 앞둔 학생이 그 과목의 중요한 정리들을 이해하기 보다는 책과 노트에 있는 그대로 암기해서 시험에 임하는 것을 때때로 목격 하고서 하는 말입니다. 제가 이전에 無知님 댓글로 썼던 말이기도 합니다

교과서는 논리적으로 쓰여져야 하기 때문에 내용을 삼단논법으로 이어져 내려가는 과정으로 설명 되어져 있는 반면에 실제 문제를 풀거나 증명을 하는 경우에는 교과서의 연역적 추론을 정반대로 거슬러 올라가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연역적인 서술의 순서대로 증명이나 해법을 암기하는 것은 시험을 치르는 데는 유리할지 몰라도 그 내용과 해법을 출발되는 동기의 완전한 이해를 통해 그 경험을 바탕으로 하는 체계적인 사고방식이 몸에 배어있는 것이 가장 큰 자산인 수학 전공생의 특성과 어드벤티지를 살리지 못하게 됩니다. 그런 이유로 학생들이 공부할 때는 엄정한 논리 순서인 교과서의 연역적 방식이 아니라 동기와 수학적 느낌이 선행되는 이를 도구로 해법을 찾는 방식이 되어야만 교과서나 노트의 내용을 진정 자기것으로 만들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수학적인 엄밀한 사고방식 또한 자신의 것으로 만들수 있을거란 이야기를 하고 싶습니다.

Life is complex ; it has both real and imaginary parts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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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로미오님께서 2007년 8월 15일에 본인의 블로그에 올리신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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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로미오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으아~ 민망해라 ㅠㅠ

    2007/11/18 02: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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