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력 대선주자들이 앞다퉈 박정희 전 대통령의 생가를 방문하고 있다. 대선에서의 득표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계산하였기 때문일 것이다. 상당한 세월이 흘렀지만 여전히 박정희는 보수층의 향수를 자극하는 아이콘이 되었다. 그의 딸이 높은 지지를 받으며 대선 예비주자로 나선 일도 있다. 제1 야당의 당내 입지는 여전히 확고하다. 별 다른 정치적 업적이 없어도 박정희의 딸이라는 점이 작용한 것이다.
1. 박정희의 경제는 무엇이었나?
그의 집권기간이 무려 18년이다. 그런 만큼 그에 대한 평가는 단순한 것이 아니다. 긍정적인 측면이 전혀 없는 것도 아니지만 악명높은 독재정치에 대한 논의만도 족히 백과사전 한권 분량은 넘을 정도이다.
그에게 긍정적 향수를 가진 사람들은 눈부신 경제성장을 먼저 생각한다. 사실 전쟁의 폐허속에 잿더미가 된 대한민국의 경제는 한마디로 절대빈곤의 상태였다. 가을에 추수한 곡식이 바닥나고, 아직 보리는 추수할 때가 안된 춘궁기를 보릿고개라 하였다. 바로 대한민국의 절대빈곤을 상징하는 단어이다.
그러나 대일 청구권을 모두 포기한 대가로 원조금과 차관을 받아서 경제개발에 사용하였다. 베트남에 우리의 젊은이들을 보낸 목숨값을 또 경제성장의 동력으로 활용하기도 하였다. 노동자의 가장 기본적인 권리조차 철저히 폭압하여 재벌들의 부당한 이익을 보장하였다. 대규모 토목공사로 부동산의 가격앙등을 유발하여 재벌들에게 부와 자본축적의 수단으로 선사하였다.
재벌들의 이익을 보장하고 거액의 정치자금을 받아서 통치수단을 강화하였다. 재벌과 독재정권의 정경유착은 지구상에서 그 유례를 찾아보기 어려울 정도였다. 워낙 열악한 경제사정으로 성장률은 매우 높았으나 사실 국민소득은 여전히 매우 후진적인 수준을 면하지 못하였다. 그나마 경제성장을 가능하게 했던 것은 바로 서민대중의 처절한 희생의 덕이다.
강력한 수출드라이브를 집권기간 내내 유지하였다. 이농현상을 부추겨서 저임금의 노동력을 지속적으로 도시의 경공업에 공급하였다. 가격경쟁력을 유지해주기 위하여 저임금이 필요했고, 농산물의 가격을 직접 통제하여 도시노동자가 싼 가격에 곡식을 사먹도록 하였다. 그 것은 다시 재벌들의 주머니를 채워주는 데에 기여하였다. 재벌들은 이 시기에 비약적으로 성장하였다.
알고보면 박정희의 경제가 지금 우리경제의 문제점을 거의 대부분 잉태한 것이다. 그러한 기반위에 성장한 탓에 해결할 길도 막막한 문제들이 파생되고 있다. 어쩌면 외환위기도 사실상 그 때부터 예고된 사태였을지 모른다. 도농의 양극화, 수출과 내수의 양극화, 소득 계층간의 양극화, 영호남의 양극화,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양극화등 모두가 이 때부터 그 터를 잡았다.
2. 박정희의 정치는 무엇이었나?
자유당의 독재정권이 민중의 힘에 의하여 무너진 공백이 있었다. 갑자기 찾아온 민주주의는 과도기적 혼란을 피할 수가 없다. 정치인들의 권력욕과 민중의 민주주의에 대한 낮은 인식이 필연적으로 다소간의 혼란을 야기하게 된 것이다. 이러한 틈새를 박정희와 일부 권력욕에 사로잡힌 군인들이 파고 들었다. 5.16쿠테타가 그 것이다.
입법, 사법, 행정을 모두 장악하고 군권까지 완전히 장악한 그는 나라의 안정을 달성한 후 민정이양을 약속하였다. 그러나 그 약속은 휴지조각이 되었다. 자신이 대선에 출마하여 스스로 대통령이 되었다. 군이 애국충정으로 사회질서를 회복하기 위하여 부득이 헌정질서를 중단시켰다는 말이 거짓임을 증명한 것이다.
말로만 민주공화국이었지 사실상 집회, 출판, 언론, 사상의 자유는 어디에도 찾아볼 수가 없을 정도였다. 자신이 남노당의 간부출신으로 사형선고까지 받았다는 전력을 숨기기 위한 것인지 온통 사회분위기를 반공으로 몰아갔다. 곳곳에 멸공, 반공, 방첩, 국론통일등 파쇼적 구호들이 나붙을 정도였다. 6.25전쟁을 치른 기억이 또렷한 민중들에게 반공으로 일치단결하자는 것만큼 손쉬운 통치구호도 없었다.
많은 민주인사들이 투옥되고, 고문당하고, 죽어 나갔다. 실제로 남파된 간첩보다 만들어지고 조작된 고정간첩이 더 많았을 정도였다. 반공은 정적들을 제압하는 수단으로도 동원되었다. 정부의 독재에 협조하지 않는 많은 민주인사들이 반공이라는 국시에 저촉된다며 탄압을 받았다.
3선개헌을 해서 또 다시 대선에 출마하였다. 1971년의 대선이 그 것이다. 온갖 부정선거와 관권선거가 판을 치는 가운데 가까스로 승리하였다. 투표함 바꿔치기와 릴레이 투표, 표매수와 60만 대군의 공개투표까지 횡행을 하였다. 개표결과는 90만표 차이로 김대중의 패배, 박정희의 승리였다. 공정하게 진행된 선거라면 당연히 박정희는 패배하였을 것이다. 또 다른 정권강탈 선거였다.
그러고도 대학생들의 시위를 막기 위해서 학교앞에 탱크를 세워놓는 공포정치를 하였다. 초등학생들이 박정희를 찬양하는 노래를 불러야 했고, 군대식으로 사열과 분열을 연습하고 실시한 일도 있었다. 누구도 그가 죽기 전까지는 집권을 할 수가 없었다. 제일 야당의 당수를 국회의원 직에서 제명해 버리고, 전 대선후보였던 김대중을 가택연금하였다. 민주화를 요구하는 시위는 가혹하게 짖밟아 버렸다.
부산과 마산에서 시위가 심각한 수위로 일어나고, 그는 수하인 김재규 중앙정보부장의 총에 맞아서 사망하고 말았다. 죽는 순간까지 집권을 하였으니 종신집권의 꿈을 완벽히 달성한 정치인이다. 심지어 그 때 자신을 추종하던 세력이 다시 집권하고, 그 들이 여전히 우리사회의 주류를 형성하고 있으니 유훈통치까지 부분적으로 성공한 셈이다. 세계사에서 몇 안되는 극심한 독재자를 한반도가 2명이나 배출한 셈이다. 바로 김일성과 박정희이다.
3. 발전된 대한민국은 왜 다시 그를 그리워 하는가?
그가 사망하고 벌써 28년이다. 민정당의 전두환, 민자당과 노태우, 신한국당과 김영삼을 거치면서 사회풍토는 많이 달라졌다. 그러한 바탕의 변화를 통해서 민주당과 김대중은 수평적 정권교체를 이룩하였다. 그리고 지금의 노무현 정권은 권위주의의 해체에 성과를 거두고 있다. 일인당 국민소득이 박정희 시절에 1,000불에서 지금은 20,000불이다. 정치와 경제에 있어서 비약적인 발전을 이룩한 것이다.
사실 박정희의 18년이 바탕이 되었음을 부인할 수는 없다. 그러나 그 때의 높은 경제성장률이라는 것이 사실 그 규모로 보면 보잘 것없는 수준이다. 그의 사망후 대한민국의 발전이 더욱 엄청난 것이다. 지금은 명실상부한 민주공화국의 면모를 갖춘 대한민국이다. 정치적으로도 그 때의 암울한 독재와 비교할 수 없는 수준에 도달해 있다.
그런데 사람들은 박정희를 그리워하고 있다. 왜 그럴까? 그 것은 아마도 사회의 구조가 안정화되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 때처럼 역동적으로 변화할 여지가 그 만큼 줄어든 것이다. 바꿔 말하자면 사람들의 신분상승의 기회가 그 만큼 줄어든 것이기도 하다. 지금은 서민이 근검절약하여 부자가 되는 일이 불가능에 가깝다. 자녀의 학력도 부모의 경제력이 결정적으로 좌우하고 있다.
외환위기를 거치면서 서민들의 삶이 상대적으로 더 어려워진 점도 있다. 세계화와 신자유주의 물결을 타면서 대외의존도가 높은 우리의 경제에 약육강식의 시장원리가 스며들었다. 약자는 그나마 가진 것도 상실할 위험이 높아지고, 강자는 더더욱 많은 것을 누릴 수 있게 되었다. 각 부분에서 양극화가 극심하게 강화되고 있다. 성장을 하더라도 고용창출에는 별로 기여하지 못한다. 갈수록 약자들이 살기 어려운 사회가 되고 있는 것이다.
박정희의 추억을 그리는 사람들은 그 시절이 지금보다 살기는 어려웠지만 기회는 더 많았다고 생각할 수 있다. 사실 영 틀린 생각은 아니다. 당장은 어려워도 희망이 있는 삶이 풍족하지만 희망이 없는 삶보다는 더 매력적인 법이다. 그러한 희망을 만들어내지 못하고 있어서 지금 박정희를 그리워하는 것이다.
1980년대부터 지금까지 경제적 지위가 열악한 서민들을 정부가 적절히 지원하고 그 부담을 강자들이 기꺼이 당담하는 시스템을 구축하지 못한 탓도 있다. 박정희 시대에 만들어진 틀을 여전히 크게 개선하지 못한 무능의 탓이다. 심지어 국민의 정부와 참여정부까지 그러한 일에 거의 성과를 내지 못하였다. 오히려 신자유주의의 물결은 이 시기에 더욱 거세게 우리의 서민들을 유린하고 있다.
4. 박정희가 지금의 대통령 이라면...
수 많은 잘못에도 불구하고 절대빈곤을 벗어난 업적이 있었던 것은 사실이다. 그런데 그런 박정희가 지금의 시대에도 필요할까? 이 부분에서는 전혀 그렇지 않다. 그 시대는 그러한 방식으로도 일정한 성과를 낼 수 있었을지 모르나 지금은 그렇게 하면 나라가 망할 것이다.
약소국의 지위에서 강대국의 보호를 받으며 성장했던 시절과 지금은 다르다. 그러한 국가주도의 개발이 세계시장의 질서에 편입된 지금의 대한민국에는 적용될 수가 없다. 지금은 당당히 선진국과 경쟁하면서 나름의 발전을 추구하지 않을 수 없는 시대이다. 강대국도 더 이상 대한민국을 보호해야할 약소국으로 인정하지 않고 있다. 미국도 강력한 시장개방 압력에 앞장서고 있다. 과거와 같은 보호막은 없다.
시험을 치면 0점맞는 학생에게 10점이나 20점으로 발전하는 것인 어려운 일이 아니다. 조금만 공부하면 금방 가능한 일이다. 그러나 이미 90점을 맞는 학생은 10점을 더 올려서 100점을 맞기가 매우 여럽다. 우리는 이미 우등생이다. 여기서 박정희 시대와 같은 높은 성장률은 기대하는 것 자체가 우스운 일이다.
결코 그 시대의 박정희는 지금 갈망할 리더가 아니다. 그는 구시대의 악몽으로 몸서리를 칠 망령일 뿐이다. 대선주자들이 박정희의 생가를 방문하고 그런 장면을 보여줌으로써 표를 얻으려 하는 모습은 우리 국민의 수치일 뿐이다. 그러한 행위가 득표에 도움이 된다는 계산은 바로 국민의 박정희 향수가 그만큼 강하다는 반증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과거의 독재시대로 돌아갈 필요가 없다. 좀 더 민주적이고 각부문이 골고루 발전하는 미래로 지향해 나가야한다. 개개인의 창의성이 효과적으로 발현되고 그 것을 무기로 세계시장의 경쟁에서 이겨내야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항상 약자들의 절망은 피할 수 없다. 그들을 적절히 보호하고 다시 사장의 경쟁에 동참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시스템을 만들어야한다. 그 일에 많은 재정이 소요된다면 그 부담은 시장에서의 강자들이 기꺼이 감당하는 제도를 구축해야할 시점이다.
지금은 폭압이 필요한 시기가 아니다. 지금은 토목공사가 필요한 것이 아니다. 지금은 수출드라이브만 필요한 것이 아니다. 지금은 대도시에 모두 모여야할 시기가 아니다. 민주적 리더쉽이 필요하다. 창조적 성장모델을 개척해야한다. 수출과 내수가 균형을 찾아가도록 노력을 기울여야한다. 국토가 균형된 발전을 할 수 있도록 노력할 때이다. 더 이상 박정희는 대한민국에 필요하지 않다. 그 때의 18년도 악몽인데 또 다시 그를 추억하는 것은 망신스러운 일이다.
------------------
포켓 : 박정희가 절대빈곤을 벗어나게 해주었다는 것에도 동의 못함~
포켓 : 박정희가 절대빈곤을 벗어나게 해주었다는 것에도 동의 못함~
------------------
이 글은 비토세력님께서 2007년 11월 14일에 찌질넷에 발표하신 글과 포켓님의 댓글 한줄입니다.
한RSS를 이용해서 보다 편리하게 알밥로그를 구독하세요.





댓글을 달아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