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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 주 :

아래는 꽤 오래전에 알바들이 놀던 모 사이트에서, 알바들간에 나누었던 대화를 정리/편집한 내용입니다. 불필요한 잡담은 가급적 지웠고, 논의의 흐름을 방해하지 않는 한도내에서 읽기 좋게 편집해 봤습니다.

다시 읽어보니 알바들 모두 참 새삼스러운 눈으로 보게 되는군요.

2008/03/29 - [문화/여행] - 매직 리얼리즘에서 소쉬르까지 - 2
2008/03/28 - [문화/여행] - 매직 리얼리즘에서 소쉬르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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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송팬 :

깃또님/ 제 개인적 생각으로는, 어느정도 촘스키도 인정하고 있습니다만, 푸코가 보여준 것이 적지 않게 흥미롭습니다.
 
예를들어, 깃또님도 잘 아시겠습니다만, "감시와 처벌"에서 푸코는 형벌형태의 변화에 대해서 탐색하고 있는데,  푸코는 왜 전근대사회에서의 공개적인 신체형 대신에 근대사회에 와서는 자유형이 지배적 형벌형태로 등장하는가하는 문제에 대한 전통적 견해에 도전하고 있거든요.
 
그러한 형벌형태의 변화가 인본주의나 인권의식의 상승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 푸코가 decliplinary power라고 명명한 새로운 사회통제방식의 성장의 결과이고, 그러한 규율적 파워는 처벌형태에서 뿐만아니라 병원, 학교와 같은 다른 사회 조직들에서도 발견된다는 것이 "감시와 처벌"에서 푸코가 주장하는 핵심내용의 일부이거든요. 그리고나서, 규율적 권력의 기원이나 구조 발전형태들의 분석이 또다른 중요 내용이죠.
 
즉, 푸코는 현대사회가 계몽주의니 합리성이니 유기적 연대니 자본주의이니하는 것이 아니라 규율적 권력이라는 새로운 사회통제방식에의해서 성격지워진다라고 주장하는 것이고, 그런점에서 푸코는 포스트-마더니스트가 아니라 안티-마더니스트라고 불리워지죠.
 
글쎄요. 어떠실지 모르겠습니다만, 제가 비롯 푸코의 관점에 동의하고 있지는 않습니다만, 저는 푸코가 현대사회에 대한 흥미로운 견해를 깊은 지적 능력 속에서 매우 재미있게 제시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촘스키도 언급했습니다만, 다른 프랑스철학자들처럼 푸코도 어떤 책이나 인터뷰를 보면 잠언같은 말을 하고 있기도 합니다. 제가 몇번 읽어도 못알아들으면 저에게는 잠언같은 이야기이죠.
 
이거 제가 푸코를 제대로 아는 사람이 아닌데, 조금은 주제가 넘었는지 모르겠습니다.
 
요점은, 제가 알아먹지 못하는 이야기를 한부분도 있습니다만, 최소한 저에게는 제가 이전에 알지 못했던 현대사회에 대한 흥미로운 시각을 푸코가 제시해주고 있다가 되겠습니다.

포켓 :

심송팬님, 궤홓이 없는 사이 흥미로운 의견들을 제시해주셨군요.
사실 촘스키가 언급한 부분은 정도의 차이는 있을지언정 프랑스 구조주의, 후기구조주의, 그리고 이어지는 포스트모더니즘에 대하여 우
리들도 똑같이 느끼는 부분이거든요. 이건 레비스트로스의 구조주의 이론에서 느꼈던 것과도 아주 유사합니다. 이들 이론들이 기존의
이론적 틀을 벗어나 우리 인식에는 분명 획기적인 변화를 가져다주었지만, 그 다음에 오는 것은 뭐랄까 뭔가 우리를 꽉 채워주는 것
이 아니라 더 허망하다는 것이거든요... 실천주의 학자로서 촘스키가 포스트모던 숭배자들에 이런 반응을 보이는 것은 저도 충분히
이해합니다. 저도 데리다니 라캉이나, 크리스테바 기웃거려보고, 토론도 해보곤 했지만 포스트모던 컬트주의자들의 지적유희에는 신물
이 났던 기억이 있습니다. 특히 데리다의 해체주의는 너무도 심해서.. 그러다보니 프랑스 학풍, 철학풍조에 질리게 되고,,게다가
제 업종인 텍스트 분석으로 들어가면 이게 아주 적나라하게 들어납니다.

물론 니체로부터 시작된 이들 지적계보학이 이룬 성과는 소중한 지적탐험의 결과로 늘 존중하는 마음은 갖고 있습니다.

궤네깃또 :

심송팬횽/ 횽이 푸코에게서 흥미로움을 느끼셨다니 "아..그러시구나" 할 뿐입니다. ㅎㅎ
무엇이든 새로운 시각으로 세상을 보여주면 당연히 흥미롭죠.
저도 푸코의 그런 시각이 흥미롭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말하는 것은 흥미롭냐 아니냐가 아니라, "그래서 뭘 어쩌라는 거냐" 의 문제 같습니다.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은 철학이란 것이 생겨난 이후 끊임없이 계속 재생산되고 있는 일반적인 현상인데, 기존의 철학은 세상이 이러이러 하니까 이렇게 살면 어떠냐 하는 것이 제시되는 형태입니다.
 
즉, 해석 + 방법,방향제시의 형태이죠.
 
그런데 포스트모더니즘은 독특하고 지 꼴리는대로의 해석은 있는데 방향이나 방법의 제시가 없다는 겁니다. 그냥 그렇다는 말 뿐입니다.
 
그래서 허탈합니다. :그러니까 "뭘 어쩌자는거냐"라는 소리가 나올 수 밖에 없죠.
철학이란 것이 이래서는 좀 곤란하지 않겠습니까? ㅎㅎ
 
그런데 포스트모더니즘 계열의 철학들은 그냥 그렇게 세상을 해체하고 모순, 불확실성, 단절, 차이 등의 세계에 대중들을 던져 놓고는 그 상태를 "해방"이라고 말하고는 끝입니다.
 
자유주의적 인본사상에 대한 대안이 부재하다는 비판에 대해서 푸코는 대답이 없습니다. 이런 태도는 <감시와 처벌>에서도 마찬가지로, 그런 감시 속에서 어떻게 인간의 본성을 찾을 수 있는 지에 대해서는 아무런 답을 주고 있지 않습니다.
 
그저 그의 지적탐험에 우리는 흥미를 느낄 뿐이죠.
 
그리고 또 한가지,
권력의 규율성이나 감시 등등에 관한 것은 제가 보기엔 푸코만의 독특한 이론적 성과로 보기는 힙들다는 생각입니다.
 
제가 접해보기로도
가까이는 엘리아스 카네티가 <군중과 권력>을 통해서 권력의 속성을 감시와 규율, 명령 등이라고 설파한 적이 있고, 좀 멀리로도 이미 18세기에 벤담이 파놉티콘(Panopticon) 의 개념을 설명한 바가 있어서, 저는 솔직히 크게 새롭다는 인상이 들지는 않더군요.
 
그저 푸코가 다른 책에서 광기나 성의 문제를 권력과 결합한 것이 조금 흥미로울 뿐. ㅎㅎ
 
저도 푸코 전공자도 아니고 제가 받은 느낌은 아무튼 그렇습디다.^^

심송팬 :

포켓님/ 사실 제가 데리다 라캉 크리스테바 이런 사람들에 대해서 잘 모릅니다. 또한 프랑스 구조주의니 후기 구조주의도 잘 모릅니다. 그나마 알뛰세르에 대해서 조금 아는 정도입니다.
 
저도 프랑스 현대 철학자들을 그렇게 좋아하지 않습니다. 제가 제대로 그분야를 공부한 것도 아니고, 무엇보다도 그분들의 주장을 제가 이해를 잘하지 못하기때문이죠.
 
그런점에서 촘스키의 평가가 제게 마음의 안정을 주는 것도 사실입니다. 촘스키 같은 사람도 이해를 못하니 제가 이해하지 못해도 이상한 일이 아니잖아요.

더구나 제가 프랑스 구조주의적 사고를 좋아하지도 않습니다.
 
제가 프랑스 현대철학 일반을 변호하려고 했던 것은 아니구요. 사실 그러한 능력도 되지 못합니다.
 
제가 말씀드리려고 했던 것은 단지 푸코가 제시하고 있는 현대사회의 견해가 '이미 다 알고 있는 이야기 아닌가' 정도로 그렇게 쉽게 무시될수는 있는 종류의 것은 아니다라는 것이었습니다.
 
깃또님/
1. 현재에 와서 맑스주의가 급격히 약화되는 주요한 이유의 하나는 그 이론이 기반하고 있었던 변혁의 담지자로서 노동자 계급이라는 가정이 더 이상 강한 설득력을 갖지 못하게된 현실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한 현실이 올바른 것인지 아닌지는 모르겠습니다만, 이러한 현실을 받아들이는 사람들에게는 맑스의 이론은 더 이상 '뭘 어쩌자는거냐'에 대한 답을 제시하고있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맑스의 이론은 설득력있는 대안을 제시하지 못하기때문에게 우리에게 가치없다고 평가될 수 없습니다. 맑스의 이론은 여전히 우리에게 가치 있고 공부할 필요가 있습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에 대한 통찰력있는 해석과 이해를 제시해주었기 때문입니다.
 
즉 깊이있고 새로운 해석의 제공은 어떤 학문적 이론이나 주장을 평가하는 중요한 기준의 하나입니다.  
 
2. 제가 아는한, 우리가 높게 평가하고 있는 많은 주장이나 이론들은 방향 방법의 제시를 하고 있지 않습니다. 뚜렷한 방향 방법을 제시하는 이론과 주장은 몇개되지 않습니다. 오직했으면 맑스의 포이에르바하에관한 테제가 나왔겠습니까.
 
방향 방법의 제시의 부재가 어떤 철학적 주장이나 이론의 평가 기준이 된다면, 높게 평가 받을 수 있는 주장이나 이론은 거의 없다는 것이죠.
 
3.푸코가 촛점을 맞추고 있는 사회적 이슈는 효율적이고 안정적인 질서를 유지하려는 사회와 구속으로부터의 자유를 추구하는 개인간의 갈등의 문제입니다. 자유로운 개인이 사회 틀속에서 살수밖에없는 운명 속에서 나타나는 인간/사회 본래적인 문제인거죠.
 
인간이 로빈스쿠르소가 되지 않는한 이 문제에 대한 본질적 해결은 없습니다.
 
인간은 지속적으로 사회또는 질서를 건설해야하고 그리고 그것을 무너뜨려야하고, 또 새로운 질서를 건설해야하는 수레바뀌 속에 있습니다.
 
제가 아는한 이 문제에 대한 본질적 해결을 제시한 학자는 아무도 없습니다. 맑스가 제시한 방향 방법이란 것도 집단이나 개인간의 적대적 갈등에 대한 해결에 제한 되는 것이었습니다. 나머지 문제는 맑스도 제대로 살피지 않았습니다.
 
4. 깃또님이 '자유주의적 인본사상'을 어떤 의미에서 말씀하시는지는 제가 잘 모르겠습니다만, 최소한 푸코의 문제의식은 급진적인 자유의 문제에 기반하고 있습니다. 자유의 서로다른 개념과 차이에 대한 이야기를하려면 복잡하기 때문에 이 문제에 대한 자세한 말씀은 드리지 않겠습니다.
 
5. 푸코의 주장이 새롭지 않은 것이 아니지 않는가라고 말씀하셨는데, 우선 엘리아스 카네티의 <군중과 권력>을 읽어보지 않아서 제가 잘 모르겠습니다.
 
푸코가 새로운 것은 벤담의 파놉티콘을 "감시와 처벌"에서 보여주었기 때문이 아니라, 그러한 파놉티콘을 그가 현대 사회를 특징짓는다고 믿는 규율적 권력의 본질을 보여주는 것으로 이해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감시와 처벌에 푸코도 언급하지만, 현대사회에서 '푸코가 규율적 권력의 특징으로 여기는' 현상들의 성장을 인지한 사람들은 많습니다. 하지만, 그것을 현대사회의 본질로 이해한 사람들은 별로없습니다.

궤네깃또 :

심송팬횽/ ㅎㅎ 아마 제가 어딘가 푸코를 과도하게 폄하한다는 느낌을 받으셨나 본데....
제가 그럴 주제나 됩니까요? ㅎㅎ
 
푸코의 어떤 이론 자체가 무가치하다는 그런 것이 아니라, 그렇게 포스트모더니즘이니 어저니 하며 전세계적인 선풍을 일으킬 만큼의 것이 되는건가...하는 그런 의아함 정도랄까요.
 
그러니까 소문난 잔치에 별로 기대한 만큼의 먹을 것이 보이지는 않더라는 생각이 들더라는 것 입니다.
 
아무튼 팬횽이 그리 느끼신데 반해 저는 이렇게 느껴지더라 정도인 것이죠. 그냥 말씀드린대로 적어도 저한테는 푸코적 시각이 그리 새롭지 않았던 것은 사실입니다.
 
그리고 맑스주의에 대한 실망은 사실 자칭 사회주의의 몰락에 기인한 측면이 더 크겠죠. 제가 보기엔 전혀 맑스주의와는 다른, 말스주의의 외피를 쓴 배타적 볼세비키의 실패일 뿐 입니다만...
 
그리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맑스주의의 현대적 변용과 방법의 제시는 꾸준히 이어지고 있는 것으로 압니다. 그런데 "어쩌라는 것"이 없다고 말씀하시니 좀 당황스럽군요.^^

심송팬횽/ 제가 따로 푸코에 대해 정리해둔 것은 없고..
블로그를 검색해보니 푸코에 대해 저랑 비슷한 결론을 가지고 있는 글이 보이는군요.
 
심심하고 틈나실 때 한번 보시길.^^
 
 
http://blog.naver.com/chsuscamp?Redirect=Log&logNo=90016266429

니미럴리스트 :

이제 푸코의 장미도 시들어가니 화제를 돌려보죠.
제가 평소 가졌던 의문인데...
전문가들이 있으니 답변이 가능할듯...
 
촘스키 영감태기의 언어학적 업적이 (변형생성문법인가 나발인가 하는거) 쏘쉬르의 업적만큼 위대한 것인가요?
아님 그 영감이 워낙 싸돌아댕겨서 그런 명성을 얻게 된 것인가요?

자유로 :

전문가는 아니지 만영~
소쉬르에 대해서는 사실 잘 모르지만 그 영향력이 언어학에만 머무르지는 않았다 할 정도로 크다고들 흔히 말하는데 그 당시는 지금처럼 학문체계가 세분화되기 이전이니까 그렇게 말할 수 있는게 아닐까 싶 근영~
촘스키(그리고 그의 추종자들)의 이론은 상당히 실천적이라서 번역 통역에도 도움이 됩니다. 어떤 선생님들은 혁명적이라는 표현을 서슴치 않더 근영~
적어도 유명세에 따른 후광효과는 아닐 거 예영~
 
*이거 중독성이 강하 근영~*

궤네깃또 :

니미럴횽/ 전문가 횽아들이 제대로된 대답을 해 주실 동안 막간을 이용해서 시정잡배가 잠깐...^^
 
뭐든지 최초가 가장 위대하지 않겠어요? 소쉬르를 언어학의 아버지라고 하는 데는 그만큼 대단하기 때문이겠죠.
 
그렇다고 촘스키의 변형생성 문법이란 업적이 고도리쳐서 따낸 것이냐 하면 그건 또 아닌 듯 합니다.
 
소쉬르가 언어란 어떤 것인가(언어의 개념구조)를 이야기 했다면,
촘스키는 언어가 왜 그런 모습을 가지고 있는가(언어의 체계적 원리)를 이야기한 공로를 인정받고 있습니다.
 
이건 소쉬르 이후로 언어학에선 최대의 사건이었던 모양입니다.
 
아무튼 촘스키가 좀 나대긴하는 편이긴 합니다만, 그의 언어학적 성과는 그와 무관하게 평가받을만하다네요.^^

니미럴리스트 :

자유로/ 제가 석사논문을 인공지능분야의 natural language processing에 관해 쓰려다 말아서 촘스키를 잠시 들여다봤는데요... 로직구현의 측면에서 소쉬르의 구조이론에 비해 실천적 (그러니까 알고리즘으로의 구현측면에서)으로 그다지 진일보하지 않다는 느낌을 받았거든요...물론 제 분야의 시각으로만 본, 그리고 언어학에 대한 아주 짧은 지식에 의한 판단입니다만...
 
귀두흉/ 아.. 그렇군요. 나대니까 괜히 그 학문적 성과도 후져보인다는, 황구라처럼~ (하기야 황구라가 무슨 성과가 있겠습니까만...)

포켓 :

니미럴님/여기 황양연에 언어학을 공부하신 분이 있는지 모르겠군요..
비전문가로서 감히 말하면 촘스키가 우리한테 가르쳐준 것은 언어에 대한 보편적 인식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이런 바탕이 그의 정치, 사회적 활동하고도 연관되어 있지 않을까 생각도 해보고... 다시 말해서  지구상에는 수많은 서로 상이한 언어가 존재하지만
그것에는 문법체계적으로 보편성 특성이 있고, 언어습득도 바로 이런 문화유형적으로 특회되어 있는 보편언어를 통해서 이뤄진다는 사실을 우리한테 가르쳐준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지요. 언어마다의 상이한 문법체계는 궁극적으로는 서로 포섭될 수 있다는 그의 생각이 훌륭하다는 생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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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여기서 끊겠습니다.

다음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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