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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호씨 이야기

문학 2007/11/13 23:59 by 알밥



달호씨는 내가 십 년 전 충신동에 살 때, 우리 집 아래채에 세들어 살고 있던 아저씨이다. 아래채라고는 하더라도 대문이 각각 나 있고, 안채와 통하는 사잇문 양 옆으로 볼록 담까지 쌓여 있어서 전혀 별채가 되는, 방 두 개에 쪽마루 하나의 판자로 된 집이다.

살던 사람이 나간 후 그냥 헐어버리고 담까지 툭 터서 한참 자라나는 아이들 마음껏 뛰어 놀고 운동도 할 수 있게 하려고 새로 세(貰)를 들이지 않고 있었는데, 마구잡이로 밀고 들어온 것이 달호씨였다.

"오래 살락해도 앙이 살갔수다. 넉넉잡아 열달이구마."
계약이고 뭐고 없이 전세금을 다 내놓은 것이었다.
"아주마이 댁이 복가(福家)라카니 열달 후에마 양옥 사서 나갈 겁니다."

나이가 한 오십 되어 보이는, 함경도 사투리에 키도 몸집도 크고 생김생김도 어글어글한 게 첫눈에 시원시원해서 호감도 갔고, 겨울이라서 당장 헐 것도 아니고 해서 한번 더 세를 놓기로 했다.

이사 오던 날, 아홉 평 짜리 방에는 들여놓을 수 없게 많은 박스로 포장된 짐을 보고 어이가 없었다. 그러나 그보다 더 놀라웠던 것은 한창 유행하는 판탈롱 주홍색 바지에 몸에 착 달라붙는 노란 스웨터, 거기다 은행 빛 스카프를 가슴에 늘어뜨린 그 부인, 원색적이었는데도 천박해 보이지 않고 세련된 모습이었다.

탄불을 피우라고 밑 불 하나를 집게에 들고 가보니 방 하나에는 짐은 풀지도 않은 채 곡간에 쌀가마 챙겨놓듯, 차곡차곡 쌓고 있었다.

"고등학교 다니는 아들 둘은 그냥 대구에 두고 왔어요. 걸핏하면 집을 옮겨다녀서 이렇게 짐도 안 풀어요."
젊은 여자의 음성보다도 더 탄력 있는 똑 떨어진 서울 말씨였다.

전세 살이 하고는 너무나 어울리지 않게 세련된 여자가 괜히 미안해서―얕은 천장하며 비닐장판, 얼룩진 도배지― 나는 도망치듯 나와 버렸다. 그것은 마치 초라한 집에 놓여진 호사스런 가구처럼 보기에 민망하였다.

우리 집 쪽에선 부엌 조리대 뒤 서쪽 창 밖이 뒷마당이고 아래채에선 앞마당이 된다. 새벽밥을 지으려고 부엌 불을 켜면 부지런히 뛰어나가는 활기찬 달호씨의 모습이 유리창에 비추어 오고 점심때쯤이면 "영배야" 아이 이름으로 부인을 부르면서 한아름 먹을 것을 안겨 놓고 나간다. 옆에서 봐도 절로 힘이 나는 모습이었다.

부인은 혼자 있으면서도 곱게 화장을 하고 있었으며 이따금씩 아주 썩 좋은 소프라노로 가곡을 부르는 소리가 들려오곤 했다. 그리고는 낮에 혼자 있기 심심하다고 쪽문을 살그머니 열고 와서는 혼자 손에 사내아이 넷을 기르는 내 일손을 도와주었다. 돌잡이 막내는 내 등에서 떼어다 숫제 아래채에서 길러 주었다.

"바깥양반이 은행에 다니시나 보죠?
젊은 분들이 이렇게 참하게 기반 잡고 사시니 참 보기 좋고 부러워요."

부인의 이런 말로 미루어 봐서도 결코 평탄하지만은 않았을 지난날의 그들 생활을 미루어 짐작할 수는 있었지만, 이 헐어버릴 집에 살기에는 도무지 어울리지 않는 부인의 사연을 나는 늘 궁금해했다. 우리의 사이가 많이 친숙해졌을 때 부인은 내 궁금증을 알기라도하듯 조금씩 자기의 지난 일을 털어놓았다.

"예술대학 성악과 이학년 때였어요."

사람을 피해 부인은 새벽마다 집 근처 남산으로 발성연습을 하러 다녔다. 아무도 듣는 사람도 보는 사람도 없는 줄 알고 마음껏 소리치고 내려오는 그녀를 오랫동안 지켜보던 남자가 있었다. 그 남자가 바로 달호씨였다. 남자는 그때 함경북도 회령에서 단신 월남하여 젊은이들의 유일한 아베크 코스였던 남산을 터전 삼아 겨울엔 고구마와 군밤을, 여름엔 아이스크림을 팔며 공부하던 고학생이었다.

학교에 갈 때 올 때는 물론 길을 가다 뒤돌아 봐도 어김없이 뒤따라오는 큰 키의 남자. 따로이 잠자리가 없는 그는 여자의 창 밖 담 밑에서 밤새도록 앉아 있었다. 어떤 겨울은 팔려고 준비한 군밤을 통째 대문 안에 쏟아 부으며, 어떤 여름은 아이스케잌 통을 마당 한복판으로 팽개치며,

"야 언제까지 이렇그 살 놈 앙이데이, 크게 날을 놈이다. 높이 뛸 놈이여…"

대문에다 대고 머리로 박치기를 해댔다. 이 생존을 위한 강인한 남자의 투지와 야망이, 부모에게 의존적이고 나약한 선병질적인 오빠들만 보아오던 그녀에겐 신선한 충격이고 삶의 감격이었다.

전쟁이 일어났고 피난지 대구에서 이 남자와 재회했을 때 부인은 이것을 운명으로 받아들였다. 집안의 반대를 무릅쓰고 이루어진 그녀의 결혼으로 친정과는 결별이 되다시피 했고 부인은 이 불 뿜는 화차 같은 남자의 아내가 되어 그와 함께 파란과 기복이 수없이 반복되는 결혼생활을 시작하였다.

그 남자는 가난했던 고학생시절을 복수라도 하는 것처럼 돈 벌기에 혈안이 되었다. 수없이 쓰러지고 수없이 일어났다. 그럴 때 마다 명분은 여자를 여왕처럼 호사시켜 주고 싶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사실 남자는 그렇게 했다.

그러나 잘 살아도 못 살아도 여자에겐 언제나 불안했다. 그 남자에겐 안정은 침체였다. 생활이 안정이 되어 한숨 돌릴만하면 새로운 도전을 시도하곤 했다.

이 집에 오기 전까지도 대구에 꽤 괜찮은 집에서 살았다고 했다.
어느 날 집달리의 붉은 딱지가 붙여졌고, 전국을 돌며 횃불을 밝힌 그의 눈에 돈 되는 몫으로 평화시장이 꼽혔다. 이래서 시장과 가까운 내집 아래채 상자 같은 판잣집이 그녀의 열 번째도 넘는 집이 된 것이다.

이제 이러한 생활에도 만성이 된 부인은 남편 따라 옮겨 다니는 후조 같은 생리가 배어 있다고 했다. 그리고 웬만한 기복에도 동요하지 않고 잘 적응하면서 남편의 욕망의 그늘아래 얼빠진 여자로 되간다고 했다.

"애기 엄마같이 월급 타서 아껴가며 쪼개 쓰고 불리고 하는 것을 보니 되려 이상하게 생각될 정도예요."

지금부터 십 년 전인 1975년 전후는 섬유시장 최대의 호황기였다.
내가 살고 있던 충신동은 동대문시장•평화시장과 인접해 있어 시장을 생활터전으로 삼고 있는 상인들과, 집집마다 지하실과 옥상의 제품공장에서 저물도록 돌아가는 미싱 소리로 시끄러운 동네였다. 제품을 가득가득 실은 용달차가 골목을 메웠고 밤새워 작업해도 물건이 딸리던 모습은 그런 것과는 상관이 없는 내 피부로도 느껴졌다.

돈줄 찾는 눈의 밝음이 뛰어난 달호씨의 T셔츠 도매업은 적중된 것이다. 은행과장이었던 남편의 한달 월급이 아저씨의 하루 벌이, 아니 새벽 다섯 시에서 낮 열 시에 끝내는 그 여섯 시간의 수입보다 못한 것을 보고 맥이 풀려 갈등을 느끼고 있으면,

"아주마이 그렇그 한푼 두푼 모아서 언제 돈 벌어 집 늘려 가고 아아들 공부시키려 하심매? 원단으 사소. 사서 다락에 그득 쌓읍세다. 내 물건으로 빼내서 몇곱 장사 시켜 드립지."

이런 말을 자신 있게 하던 아저씨네는 정말 일년이 조금 넘어 한남동에 100여평에 잔디가 파랗게 깔린 그림 같은 양옥집을 사서 이사 갔다. 대구에 있던 아들들도 올라오고 부인은 피아노를 치며 노래를 부를 수 있었다.

그 새로 산 양옥집을 다녀오면서 원단을 사서 제품을 만들자던 달호씨의 제의를 듣지 않았던 후회와 집을 잡혀 융자를 얻어 일을 해보자 할 때 하얗게 질려 버렸던 남편의 소심함이 무능으로 연결되어 씁쓸하고 허탈했다. 벼르고 있었던 일이기도 하고 단계를 밟아가며 사는 생활의 분풀이라도 하듯 아래채 판잣집을 헐어버렸다.

그러나 조리대 뒤의 서쪽 창문을 열고 넓어진 뒷마당을 볼 때마다 공연히 달호 아저씨가 위태위태하게 느껴지고 그 끝 갈데 없는 욕망의 어느 쯤에서 조각나는 아저씨의 모습이 떠오르는 것이었다.

"아저씨, 이젠 연세도 있으시니 더 큰 사업하신다고 또 벌이지
마시고 봉제 공장이나 잘 이끌어 가세요."

놀러 간 김에 이렇게 이야기하면,
"아주마이는 무시기 모르구마. 이병철이 뱃속부터 이병철이가?
사나이 나이 오십이면 진짜 일으 할 때지. 두고 봅세. 이 김달호 세상 한번 쥐어 볼라오."

'맨•스타' 'M•G•M' 이런 상표의 옷이 모두 달호씨네 제품으로 공장을 크게 늘리던 아저씨가 어느 날 남편을 찾아왔다.

"융자를 해 주기오. 내 큰 몫을 하나 잡았수다."

그 때의 아저씨는 매우 들떠 있어 보였다.
동해안의 야산을 깎아내려 휴양지를 만드는 일이란다. 이제 앞으로 국민 소득이 늘어가면 레저가 돈이 되는 세상이 온다는 것이다. 급해서 헐값에 내놓은 큰 산을 길에서 줍듯이 거저 주웠으니 돈을 마련해 달라고 했다.. 한남동의 그림 같은 양옥도, 공장도 다 처분된 것은 말할 것도 없다. 동원할 수 있는 한의 사채도 모두 끌어들였으리라.

실려나가는 짐짝을 보며 부인은 자기의 욕망의 성취를 위해선 가족의 안위가 염두에도 없는, 그러면서도 욕망의 당위성을 가족으로 삼는 남자의 일방적 횡포에 치를 떨었다. 그리고 누적된 분노는 남편과의 마지막을, 어떤 형태의 것이든 그 남자와의 끝을 생각하게 했다.

아저씨가 꿈꾸던 꿈의 동산은 삽 한번 잡아보지 못하고 무너져 버렸다. 헐값이라고 산 태백줄기의 그 산은 매매를 할 수 없는 어느 문중의 종중 산이었다.

나이 탓이었는지 재판이 진행되는 동안 불 뿜는 화차 같은 박력도 새로운 돈 줄기를 찾아 나서는 의욕도 보이지 않고 의기소침해 있었다.

달호 아저씨가 세상을 떠났다는 얘기를 들은 것은 그 얼마 후의 일이다.
그 동안 아저씨는 술을 많이 했고 세상을 뜬 그 날도 술에 취해 세 들어 살고 있는 가파른 이층계단을 다 올라와서 아래로 그냥 구른 것이 그대로 뇌진탕이 되어 하루를 넘기지 못하고 운명하고 만 것이다.
죽기 전 잠깐 눈을 뜨고 입술을 겨우 움직여 띄엄띄엄 말을 했다고 한다.

" 후 회 는 앙이 한 다이…"


(1986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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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로미오님의 어머님께서 쓰신 작품중에서 허락을 얻어 올리는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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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닭배달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헉... 로묘횽 어머님은 글을 참 잘 쓰시네.

    2007/11/14 01:54
  2. 오가다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한편의 드라마를 연상케 합니다.

    2007/11/15 1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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