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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물겨운 라면

사는이야기 2007/11/22 12:48 by 알밥


나는 입이 짧아서 어딜 가나 고생이다. 특히 비린 것을 어려워해서 생선류를 잘 못먹는다.
 
지금으로부터 20여년 전 딱 이맘 때, 어렵게 들어간 직장을 입사 1년을 코앞에 두고 아무 이유없이 때려치고 홀연히 여행을 떠난 적이 있다. (그랬다가 나중에 집을 찾아온 선배한테 줘터지고 다시 들어갔다)
 
서울역에서 가장 늦게 떠나는 차를 살펴보니 목포행이라서 목포를 갔고, 새벽 목포 시외버스터미날에서 제일 먼저 떠나는 차를 보니 여수행이라서 여수로 갔다. 여수에 내려서 또 정처없이 거닐다보니 돌산대교라는 멋진 다리가 나타났다. 그래서 그냥 건넜다.
 
돌산대교

돌산대교 http://100.naver.com/100.nhn?type=image&media_id=50442&docid=49200&dir_id=0404010304

 
돌산대교를 건너면 돌산도라는 섬으로 들어서게 된다.(당연한가?) 아무리 육지와 가깝고 연륙교로 이어져 있어도 섬은 섬이다. 돌산도에 들어서자 마자 집이든 담이든 언덕이든 모든 것이 야트막한 전형적인 섬의 풍경이 눈으로 확 들어왔다.
 
그냥 또 걸었다. 오후 서너시 짧은 겨울해가 약간 피곤한 기색을 보일 무렵 드디어 배가 출출해졌다. 그전까지는 뭘 먹었을까? 아마 우동이나 국수나 뭐 그런 걸 먹었겠지 뭐. 사라호 태풍 때 한쪽 귀퉁이가 허물어졌다는 제방이 보이는 허허벌판에, 직각에서 약 15도 정도 기울어진 버스정류장 표지판이 있고, 그 옆에 반대 방향으로 역시 약 15도 쯤 기울어져 보이는 외딴 구멍가게가 보였다.
 
가게에 들어서자 마자 비릿한 냄새가 코를 찔렀다. 가운데에서 할머니께서 쥐치 쯤으로 추정되는 평평하고 작고 까만 고기를 다듬고 있었고, 그 고기를 직접 잡아온 마을 아저씨들이 생선 요리를 기다리며 왁짜지껄 막걸리판을 벌이고 있었다.
 
"저기... 라면 하나만 끓여주시겠어요?"
"에구~~ 이를 어쩌나, 우리는 그런 거 안하는데...
그랴도 이 근처에 먹을 데도 없을텡께 금방 하나 끓여줄께, 지둘리셔~~"
 
맘씨 좋은 할머니는 잠시 주방을 겸하고 있는 가게 안을 두리번거리더니, 생선 다듬고 있던 냄비를 후룩 비우고 수돗물로 대충 헹궜다. 헉!! 저기다 끓이면 무쟈게 비릴텐데...설마...라고 머리가 돌아가기 무섭게, 대충 행구다 만 냄비에다 바로 물을 담그고 불 위에 올렸다.
 
끓인 물로 한번 씻어내려고 저러시는 거겠지 하는 기대는 물이 끓자마자 라면을 풍덩 집어넣고 스프를 팍팍 털어넣는 할머니의 씩씩한 동작에 여지없이 무너지고 말았다. 마지막 남은 기대는 물이 오랫동안 끓으면 비린내도 사라질 것이라는 지극히 비과학적인 바램 뿐이었다.
 
라면이 다 끓을 무렵 할머니는 다시 한번 가게 안을 두리번거렸다. 아마도 그릇을 찾으시려는 것 같았는데 느닷없이 무슨 해초같은 게 담겨있던 그릇을 또 후룩 비우더니... 거기까지도 괜찮았을지 모르겠는데, 그 그릇을 생선 다듬는 도마 위에 있던 행주로 쓱쓱 닦더니 거기다 라면을 부어서 내 앞에 힘차게 놓아주는 것이 아닌가. 크헉~~
 
맛을 볼 필요도 없이 라면에서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김에서 비린내가 폴폴 풍겨올라왔다. 그래도 할머니가 하시던 일 멈추고 특별히 만들어준 정성을 생각하면 어떻게든 먹어야 된다. 조심스레 한 젓가락을 떠서 입에 물었다.
 
쥐치로 추정되는 생선과 그릇에 담겨있던 이름모를 해초와 도마 위에 있던 행주, 각기 다른 비린내가 따로 또 같이 어울려서 폭탄이 터지듯 입안으로 퍼졌다. 꿀~~꺽~~
 
한 입을 겨우 씹어삼키자 속에서 부글부글 즉각적인 반응이 올라왔다. 할머니는 생선을 다듬으면서 "워뗘? 먹을 만 허쟈?"하는 흐뭇한 표정으로 연신 나를 돌아보고 있었다. 도저히 엄두가 나지 않았지만 다는 아니더라도 반은 먹어야 예의를 차리는 것이라는 생각에 마음을 다져먹고 힘겹게 호흡을 가다듬었다.
 
그렇게 두번째 젓가락을 집는 순간 그릇 옆으로 뭔가 시커먼 게 툭 떨어졌다. 파리였다. 혹시나 싶어 고개를 들어 위쪽을 쳐다봤다. 가게 천정에는 4월 초파일 연등 달리듯 파리끈끈이가 주렁주렁 달려 있었고, 그것도 혹시 자살욕구를 가진 파리가 있어 생을 마감하고자 달려들고 싶어도 도저히 발 디딜 틈이 없어 돌아가야 할 정도로 파리가 2층, 3층으로 더덕더덕 새카맣게 붙어있었다.
 
그런 검은색 파리끈끈이가 내가 앉은 탁자 위에만도 3개나 달려있었다. 끈끈이에 붙어있는 수천 마리의 파리 중 몇 마리는 가느다란 다리 하나만 끈끈이에 걸친 채 여차직 하면 라면 위로 떨어질 태세를 갖추고 있었다.
 
어쩔 수가 없었다. 대략 몇 천원 쯤 집어서 할머니의 손에 쥐어드리고 인사를 꾸뻑 하고 가게를 뛰쳐나왔다. 할머니가 망연자실 황당해한 것은 두 말 할 필요가 없다. 원래는 거기서 아무 버스나 잡아타고 어디론가 이동할 생각이었지만 할머니가 가게 밖에까지 나와 안타깝게 손짓을 하시는 통에 그럴 수가 없었다.
 
가던 방향으로 또 걸었다. 속에서 꺼억꺼억 올라오는 쥐치와 해초와 행주의 복합 향기를 겨우겨우 견뎌내면서.



코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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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이 글은, 원저자의 동의하에, 별도로 편집,게재된 글입니다. 불법적인 펌글이나 스크랩이 절대 아님을 밝히는 바이오니, 오해 없으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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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로미오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삼가 명복을 ... ㅠㅠ
    근데 파리 걱정은 안하셔도 됐는데요.. 가뜩이나 다 드시기 힘든 거 파리가 조금 나눠먹는 게 어때서요?

    2007/11/22 13:26
    • Favicon of http://albablog.kr albab  댓글주소  수정/삭제

      코코님이 워낙에 생명을 사랑하시는 분이라서..

      혹시나 파리가 라면에 빠져 죽을까봐 걱정하신 걸껍니다.

      2007/11/22 13:56
    • 로미오  댓글주소  수정/삭제

      역시 따뜻한 마음에 비해서 두뇌회전은 약간 못미치시는 순진한 콕호님 ... 제가 콕호님이라면 조심스럽게 한마리씩 파리를 끈끈이에서 해방시키겠습니다.

      2007/11/22 14:33
  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비밀댓글입니다

    2007/11/22 15:25
  3. 심송팬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제목이 "눈물겨운 라면"인데, 본문에서'눈물'은 없네요.

    2007/11/24 16:41
  4. young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갑자기 생선 비린내가 올라오는 기분입니다..
    처음부터 글 내용을 바로 머릿속으로 옮겨 상상을 해봤습니다..
    그 할머니와 냄비하며..끈끈이에 붙어있던 파리들 ..ㅎㅎ 적당히 자주 보아온지라 끈끈이의위력을 알수 있기에..라면의뜨거운 김속에 적당히 올라온느 비릿한 냄새~캬약~

    그거아세요 ?
    라면을 끓이면서 달구알(계란) 을 넣게 되면 달구알 비릿한 냄새도 무시못한다는거..ㅋㅋ
    좋은 하루 되십시요~

    2007/11/26 03:40
    • Favicon of http://albablog.kr albab  댓글주소  수정/삭제

      라면에 들어간 계란도 비린내를 풍기기도 하죠. 그래도 라면에는 계란 한개쯤 들어가야~~

      2007/11/26 12:03
  5. Favicon of http://vibary.tistory.com 비바리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집 떠나면 고생이란 말이 생각이 나네요`~

    음~~

    그 후론 라면 드시는지...

    2007/12/24 10:11
  6. Favicon of http://www.unny.com montreal flower delivery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빨간색이 인상적이네여, 멋있고 웅장한 다리군여

    2009/10/09 07: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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