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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서워서... 싫어"

사는이야기 2008/10/06 10:17 by 알밥




"우리 개 한마리 키울까?"

"무서워서 ... 키우기 싫어"

"큰 개 말고 작은 개"

"개가 무서운 것이 아니라... 나중에 그 개를 떠나 보내는 것이 너무 무서워서 ... 싫어"


둘 모두 어릴때부터 집에서 개를 길러왔기에, 별로 반대하지 않을 줄 알았는데 정색을 하며 고개를 가로젓는 바람에 결국 포기하고 말았지만 언젠가 한 번 puppy mill에서 몰티즈나 치와와 한 마리를 그냥 가져와 버리리라 생각하고 있습니다.

개를 좋아한다는 건 정말 쉬운 일입니다. 사람은 그냥 가만히 있어도 되니까요. 특히 조그만 강아지가 보여주는 어색한 몸짓과 재롱은 너무도 귀엽고 사랑스럽죠. 하지만 그건 아무것도 아닙니다. 그 강아지가 점점 커가며 주인에게 보여주는 끝없는 충성심과 사람을 즐겁게 하는 생기발랄함은 때론 귀찮기도 하지만, 강아지보다 훨씬 큰 행복감을 사람들에게 안겨줍니다. 산책이라도 한 번 시키려면 거의 전쟁에 나서는 전사의 마음을 먹어야 할 정도로, 이리 뛰고 저리 뛰고, 제 멋대로 가려하고, 바깥세상 모든 것에 끊임없는 관심을 보이는 통제 불가능한 천방치축으로 변해버립니다.

그러다가 나이가 들어 그 개가 열살이 넘어가면, 초롱초롱했던 까만눈은 깊고 짙은 갈색으로 변해가고, 항상 촉촉하던 까만 코도 마른 핑크색으로 변해가며, 한시도 가만히 있지 못하던 녀석이 거의 하루종일 제 발 밑이나 침대위에 볕이 드는 쪽에서 제가 있는 쪽으로 엎드려 졸며 하루를 보내게 됩니다. 가끔 살아있나 싶어 발로 툭 건드려 보거나, 이름을 부르면 예전 같으면 쏜살같이 무릎으로 안겨들던 녀석이 눈을 뜨고 그냥 고개만 살짝 들고(이것도 12살이 되며 귀찮은지 고개도 들지 않더군요), 짧은 꼬리를 한 번 살짝 흔드는 것으로 "나 아직 안죽었어요"라는 대답을 대신합니다. 그리고 산책을 시켜주어도 예전과는 달리 그냥 제가 이끄는대로 졸졸 따라오기만 하며 딴 곳에 눈길도 거의 주지 않고 정해진 길을 한 번 돌아보고는 집에 돌아와 다시 제 발 밑이나 침대위로 올라가 졸기 시작합니다.

가끔씩 해질녘 즈음, 산책을 하다가 공원에서 다른 개들이 주인과 힘겨루기를 하며 제멋대로 뛰어노는 것을 보면 걸음을 멈추고 물끄러미 그 모습을 한참동안이나 바라보기도 하곤 하죠. 그럴때면 "얘가 왜이러지? 혹시 ... 얘도 이제 남은 시간이 많지 않다는 걸 느끼는 걸까?"하는 두려움이 느껴져, 저도 아무말 못하고 그냥 그 곁에 앉아 함께 그 모습을 바라봅니다. 우습게 들릴 지도 모르지만, 석양을 마주보며 다른 개들과 그 주인들이 함께 어울리는 것을 물끄러미 바라보는 모습은 마치 인생의 끝자락에서 자신의 지난 인생을 되돌아 보며 "그래도 난 참 행복한 삶을 살았어"라며 만족해하는 노년의 편안하고 행복해하는 얼굴이었습니다. 차마 "그만 가자"라며 제촉할 수 없을 정도로 말이죠. 그러다가 문득 정신을 차린 듯, 고개를 돌려 절 한번 쳐다보고는 "이제 그만 가도 될 것 같아요"라며 정해진 길을 향해 몸을 움직이곤 했습니다. 이런 따뜻하고 편안한 산책은 그 늙은 개가 세상을 떠나기 사흘 전까지 이어졌습니다. 그리고 그 시간이 제겐 그 개와 보낸 많은 시간들 가운데 가장 소중한 순간들이었구요. 어린 강아지와 젊은 개가 주인에게 활기찬 기쁨을 준다고 하면, 늙어가는 개는 주인에게 커다란 편안함과 차분한 행복함을 느끼게 해주더군요.

사람의 고통보다 동물을 학대하는 것에 더 분노하고, 이락이나 아프리카에서 많은 사람들이 전쟁과 기아로 죽어가는 것 보다, 기르던 동물이 쇠약해지고 죽는 것에 더 가슴아파하는 사람들에게 "밥맛 떨어지는 인간들"이라며 비난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사람도 아닌 개를 "내 새끼, 우리 애기"하며 키우는 일이 그리 고상한 일은 아니라는 주장에 대해 저 역시 찬성합니다. 하지만, 한 마리의 개가 태어나면서부터 숨을 거둘 때까지 곁에서 돌보고 함께 생활한 사람들이 그 개에 대해 느끼게 되는 일체감이 어떤 것인지는 말로 표현하거나, 다른 사람들에게 전달할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닙니다. 기르는 개가 마치 자신의 일부처럼 느껴지는 감정이 비록 인류애와 같이 숭고한 것은 아니겠지만, 결코 부끄러워 할 것도 아니라는 걸, 많은 개를 기르고 또 떠나보내며 더욱 확신하게 되었습니다.

그 녀석이 13살을 조금 넘기고 절 떠나던 날, 동물병원을 네 군데나 돌아다니며 새벽 3시에 자던 수의사를 깨워가며 어떻게 해서라도 하루라도 더 같이 있고 싶었지만, 수의사들은 한결같이 늙어서 이젠 떠날 때가 된 것이니 차가운 수술대 위에서 보내지 말고 그냥 살던 곳에서 잘 보내주라고 했습니다. 숨이 차 헐떡이던 녀석을 13년간 함께 한 작은 이불에 눕히고, 해줄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어 그냥 녀석의 머리에 얼굴을 대고 눈물만 뚝뚝 흘리고 있는데, 그 녀석이 갑자기 고개를 들어서는 힘겹게 제 뺨에 흐르던 눈물을 핥으며 꼬리를 한번 위 아래로 흔들더군요. 그리고는 그 이불속으로 편안하게 안기듯 조금 몸을 뒤척이며 웅크리더니 눈을 감았습니다.



오늘 어떤 집의 울타리에 "Beware of dog" 라고 써붙여져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리고 그때 그 녀석을 보내고 한 달 쯤 되었을 때가 떠올랐구요. 무의식적으로 책상에 앉은 상태에서 발을 툭 앞으로 내밀어 보았지만 아무것도 채이지 않더군요. 그래서 반사적으로 몸을 뒤로 돌리며 녀석의 이름을 불렀지 뭡니까? 그런데 쭈욱 뻗은 앞발들 사이에 고개를 파묻고는 눈 한번 뜨고 꼬리 한번 살랑치던 녀석이 있어야할 볕이 들던 침대 한켠이 텅 비어있더군요. 굉장히 슬프기도 했지만, 다신 개를 키우지 않겠다는 마음 사이로, 작은 강아지를 가져와 그 녀석이 늙어 저 자리를 채울 때 까지 다시 한번 길러보고 싶다는 생각이 처음 들었습니다.


푸후@찌질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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