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 좁은 골목에 들어가면 길을 잃는다"라는 게 제 기본적인 생각입니다.
근본적으로, 사회주의나 공산주의의 아이디어에 대해서는 대략은 다들 아실 겁니다. 거기에 이어, 세부적으로 맑스가 말했던 것은 뭐고, 그걸 레닌이 받아서 어떻게 망쳤고 뭐 이런 얘기들에 대한 세부적인 규명과 사소한 개념 정의에 대한 것들은 흥미롭긴 하지만 저 개인적으로는 그렇게 집중하고 싶은 얘기는 아니군요.
전반적인 얘기는, 일반인들이 흔히 말하는 사회주의는 실패했다~ 거나 실패한 사회주의~ 라는 얘기들은 그다지 깊은 이해가 없는 표면적인 얘기였고, 실제 맑스가 얘기한 것은 이렇게 다르고, 엥겔스가 얘기한 것은 저렇게 다르며, 굳이 사회주의의 바닥에 깔려있는 근본 아이디어 자체가 실패한 것이라고 볼 수는 없다~ 는 정도로 정리했으면 좋겠습니다.
제가 오히려 관심이 가는 분야는 이런 것들입니다.
이번 미국의 금융 시스템의 위기에서 볼 수 있듯이, 미쳐 날뛰는 금융과 서비스로써의 금융(록키님과 로미오님의 표현)을 구분했으면 싶은데 그 구분이 현실적으로 어렵다는 데에서 착안을 한 것입니다.
사회를 구성하는 각 부분, 그 부분을 구성하는 각 개개인들이 움직이는 데에 있어서 동기부여로 가장 확고하게 자리 잡은 것이 과연 "이윤" 그 자체일까요? 신분상승, 성취감, 개인의 자아실현, 명예, 뭐 이런 것들은 모두 이윤의 부분집합인지 궁금합니다.
하지만 이윤은 자본주의 하의 기업들의 부정적인 활동의 근원이 되는 것은 확실해 보이는군요. 미쳐 날뛰는 금융은 바로 이윤이라는 약발 때문에 그렇게 된거 아니겠습니까?
진도를 더 나아가 보면, 국가기관이 할 수 있는 일과, 민영기업이 할 수 있는 일에 구분을 어떻게 두어야 하는 걸까~ 하는 질문까지 나아갈 수 있습니다.
이 질문은 오래전부터 해왔던 큰 정부, 작은 정부 얘기로까지 갈 수 있을 겁니다.
결국 현대사회에서 시스템의 위기를 초래하지 않는 한도 내에서 자유로운 개인들의 창의력을 고양하고 활발한 활동을 끌어낼 수 있는 동기부여를 유지하려면, 과연 국가가 제공하는 서비스와 기업의 활동범위간에 선을 어떻게 그어야 하느냐는 질문이 됩니다. 쉽게 말해서 각종 첨단기법을 동원한 금융 서비스를 국가의 통제하에 제공한다면 어떻게 될 것인가라는 이상한 질문도 가능합니다.
만약 이 논쟁에서, 종래의 국가기관, 소위 공무원들이 보여주는 전형적인 무기력과 비효율을 근본적으로 제거할 수 있는 방안이 등장하게 되고, 국가가 제공하는 서비스의 폭이 차차 넓어지게 된다면, 이 방식이 오히려 근본적으로 다시 사회주의적 시스템을 구현하는 현실적인 방안이 될 수도 있지 않을까요?
물뚝심송@찌질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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