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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주 찌질넷에서는 8월말에 있었던 서울시 교육감 선거를 빌미로 경제학의 공공선택이론을 민주주의 제도 하에서의 투표 행태 해석에 적용시켜 본 토론이 있었습니다. 세 건의 발제글과 댓글 토론을 두편으로 나누어 실었습니다.


<발제글 1> 서울시교육감 선거와 공공선택이론 - 로미오
 
현대 민주주의 사회는 유권자들에 의해서 결정된 정부에서 나오는 권력의 공익성을 신뢰합니다. 하지만 정치인들과 관료들이 일을 할 때 항상 공익만 생각하는 이타주의자들일까요? 업무 때문에 사무관이나 서기관과 함께 일을 해 본 분들은 알 겁니다. 공무원들이 얼마나 자신의 이익을 챙기고 얼마나 국민에게 상전처럼 행동하는가를 말입니다.
 
제임스 부캐넌의 공공선택이론은 현실을 반영해서 정치가나 관료 역시 국민 개개인이나 기업가와 마찬가지로 자기 자신의 이익을 위해 노력한다는 가정하에 출발합니다.
 
광우병이 의심되는 소가 도축되어 미국 국내의 각급 학교 급식에 제공되었고, 티비 뉴스의 동영상에 수도 없이 많은 소가 주저앉아 있는 것이 방영돼도 왜 미국 정부당국은 광우병의 위험이 없다고 발표할까요? 미국 축산협회(NCBA)는 쇠고기 사업과 관련된 미국의 모든 정책에서 축산업자들의 이익을 대변하기 위한 적극적인 활동을 펼치고 있는 단체입니다. 이들의 미국 농무부와 의회에 대한 로비력은 너무도 막강하므로 미국 정부가 국민보다 축산 업계의 이익을 대변하는 정책을 펼치는 경우가 허다하기 때문입니다.
 
아주 간단한 계산을 해보겠습니다. NCBA는 5억 달러의 비용이 드는 로비로 100억 달러의 이익을 볼 수 있다고 가정하겠습니다. 이때 국가는 당연히 100억 달러의 손실을 봅니다. NCBA 회원이 미국 인구의 1%라 가정하면 이 회원들은 자신들의 로비 활동으로 국가가 입을 피해 100억 달러의 1%만 손해를 봅니다. 하지만 NCBA가 로비활동으로 벌어들인 순이익 95억 달러는 모두 회원들에게 돌아갑니다. 이보다 더 좋은 장사는 없을 것입니다.
 
반대로 일반 국민 1인의 피해액은 NCBA 회원 1인의 이익에 1/95 밖에 되지 않습니다. 다시 말하자면 NCBA 회원들은 일반 국민들보다 95배의 관심과 정성을 가지고 똘똘 뭉쳐서 그 문제에 매달릴 것입니다. 즉 산만하고 무관심하고 조직화 되어 있지 않은 다수의 대중보다 공통 이익으로 똘똘 뭉친 소수집단이 훨씬 강력한 힘을 발휘하는데다 관료와 정치인은 자신의 이익을 우선시하기 때문에 정책결정은 다수의 의견이 아닌 소수 로비집단의 의견을 따르게 된다는 것이 공공선택이론을 적용한 설명입니다. 마찬가지로 미국 시민의 다수가 총기 소지 금지를 원하지만 미국 최대의 총로비 조직 전미 라이플 협회 (NRA)의 로비력 앞에 번번히 무릎을 꿇고 있는 걸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이제 투표에 대해서 이야기하겠습니다. 투표 없는 민주주의는 있을 수 없습니다. 그리고 민주주의에서 한표는 누구의 것이든 마찬가지로 간주합니다. 경제학에서의 두 사람과 하나의 물건이 있을 때 둘 중 그 물건을 더 필요로 하는 사람이 물건을 소유하는 것이 효율적이라고 합니다. 하지만 민주주의에서는 간절히 원해서 한표를 던지든 그저 그런 상태에서 한표를 던지든 그 한표는 모두 평등하게 처리됩니다. 그러면 투표는 어떤 방식으로 효율성을 반영할까요? 그중 한가지는 유권자의 기권에 있습니다. 후보들 모두가 그렇고 그런 유권자는 기권하면 됩니다. 내가 힘들게 투표장까지 가서 누구를 찍을만큼 그 후보를 원하지 않으면 기권하면 됩니다. 어중간한 상태에서 모두가 투표하는 것은 오히려 국민의 뜻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간절한 한표와 간절하지 않은 한표를 구분하기 위한 '투표기권'은 민주주의 제도하에서 투표의 효율성을 높이는데 그 역할을 할 수 있습니다.
 
지난 번 교육감 선거에서 서울시의 대다수 주민들이 공정택 후보에 대해서 반대했습니다. 공정택씨는 대놓고 강남지역에 유리한 공약을 내세웠습니다. 공정택씨의 대항마 주경복씨는 전교조의 이념을 대표합니다. 지역, 학력, 소득에 따른 교육차별을 없애겠다고 장담하는 주경복씨가 당선되면 강남 부동산 값의 하락은 불보듯 뻔합니다. 강남 이외이 지역에서는 공정택이 물론 싫지만 전교조를 상징하는 주경복도 그다지 썩 맘에 들지는 않습니다. 투표일은 공휴일이 아니어서 업무시간에 번거롭게 틈을 내서 투표해야 합니다. 결국 이 케이스는 강남지역 주민들이 NCBA처럼 공통 이익으로 똘똘 뭉친 소수집단이고 그밖의 지역 거주자들이 산만하고 조직화 되어 있지 않은 다수의 대중이 되는 앞의 예에서의 상황을 재현합니다.
 
결과적으로 서울시 교육감 선거 전체 투표율은 고작 15.4%, 강남구에선 훨씬 높은 투표율에 공정택 후보에게 61%의 몰표를 줌으로써 서울 시민 다수의 의견과 반대로 공정택 후보가 교육감에 당선되었습니다.
 
제임스 부캐넌은 그가 정립한 공공선택이론으로 1986년 노벨상을 수상하기 전까지는 철저히 차별대접을 받았던 비주류 경제학자입니다. 하지만 부캐넌은 비슷한 연배이고 주류 경제학의 거두이자 경제성장이론의 대가인 MIT의 로버트 솔로(Robert Solow, 1987년 수상)보다 먼저 노벨상을 수상했고 이는 당시 주류 경제학계에 큰 충격이었습니다.

- 로미오@찌질넷


마야세 : 한국의 공무원들이 지난 번 인수위 시절 스스로를 '영혼이 없는 존재'라고 했다더군요. 변명적 자조지만 로미오님의 글을 보면서 덧붙여야 한다는 생각을 합니다. '이기를 위해 영혼을 버린 존재' 라고.
투표 행위를 효율성으로 접목시킨 경우는 생각을 더 진전시킬 대상이라고 생각합니다. 아마 자본주의 경제학 기본 원리와 그 정치 체제의 원론적 측면에서 접근할 수 있을 듯합니다만, 다른 미시적 측면이 있다면 고려해 보겠습니다.
지난 번 교육감 선거에 대한 분석틀에서 제가 참으로 공감했던 분석이 아마 M오빠 분석이었던 듯합니다. 물론 제 기억에서 엠 오빠는 전교조의 대중적 한계에 대해 대중의 입장에서 분석하셨던 듯합니다. - 사실 그 틀은 방송이나 그런 유사한 대상에서도 적용되었고 될 수 있어서 참신하게 읽혔습니다. 더 이상이 있었는데 못 봤다면 제 게으름 탓.
저녁 쯤인가 바무스님의 교육감 선거에 대한 기권 얘기와 지금 로미오님의 글에서 적용시킨 공공선택이론을 보면서, 사실은 언제나처럼 저는 근본적 생각을 하고 있다 보니 아도르노가 떠올랐습니다. 떠오르는 생각대로 인용해 보겠습니다. 경제적 생산성의 증가는 그것을 소유한 집단이나 운용하는 이들에게 우월감을 주었고, 개인은 결국 경제 권력 앞에서 무기력해진다. 특히 정의로지 못한 세상일수록 대중에게 분배되는 재화의 양이 증가하고 그에 따른 생활 수준의 풍요적 현상에 의해 대중은 무기력해지고 조종될 가능성이 커진다. 그것은 물질적인 괄목한 성장에 비해 천박한 정신의 확산으로 나타난다. 그런 말이었던 듯합니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사실 제가 찌질넷의 글들 보면서 때로 느끼는 곤혹감과 관련 있습니다. 한편으로 대학 시절 부전공했던 경제학과 수업에서 미시와 거시란 단어의 구분을 많이 생각나게 합니다. 계속 머릿속에 맴도는 어떤 패러다임과 그 세부의 부딪힘인데, 조금 더 정리되면 한번 적어볼 생각입니다.

비토세력 :
로미오님은 전공도 아닌 경제학 책을 많이 읽으신 모양이군요. 그 것도 이해하기 쉽게 설명해주시는 능력이 탁월하십니다. 그래서 요즘 로미오님 글을 열독하고 있습니다.^^
제가 재정학 서적을 읽을 때 공공선택이론은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드는 쳅터였습니다. 다양한 투표방법들이 있고, 그중에 지금 우리가 하는 방법이 가장 보편적인 방법이지만 그 자체로 대단히 많은 한계를 가지고 있지요. 그중에 가장 큰 보통선거의 단점은 바로 간절한 소수가 그렇지 않은 다수를 이기는 일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그렇다고 선호투표제를 할 수도 없고 또 다른 방법은 그 나름의 더 큰 문제점을 가지고 있기도 하거든요. 사실 정치인들이 지역주의를 자극하고, 종교갈등을 자극하고, 수도권과 지방의 대립을 조장하고, 기득권층의 입맛에 소구하는 행동들이 바로 공공선택의 이론에 따라 유리한 입지를 확보하기 위한 행동이겠죠. 그들은 공공선택의 이론을 의식하지는 않겠지만 그러한 메커니즘을 알고 정치를 하는 것이죠.
결국 서민대중이 정치에 대한 힘을 가할 수 있으려면 서민대중의 삶이 아주 절실한 수준으로 어려워져야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외환위기로 신한국당이 도저히 불가능할 것같은 정권상실에 직면한 것처럼 말입니다. 그런 일이 다시 일어나지는 않겠지만 비슷한 수준에 도달해야 비로서 서민대중이 자신들의 선택에 절실함을 느낄 겁니다. 그러는 와중에 그들이 느낄 고통을 생각하면 답답한 일이죠. 저도 그들과 같은 수준의 삶을 살아야 하는 입장에서 두려움을 느낍니다.

돌삐 : 서민대중이 정치에 대한 힘을 가할려면 서민대중의 삶이 아주 절실한 수준으로 어려워져야하지 않을까하는 생각을 저도 똑같이 했습니다.
그런 상황이 올때 '항쟁'이나 '혁명'이나 하는 단어들이 나오는거겠지요..
그정도의 상황은 그러나 생각만해도 끔찍합니다.

마야세 : 그 상황에서는 오히려 파시즘의 영향력이 확대될 가능성이.....
특히 한국이란 상황에서는 그런 우려가 듭니다.

로미오 : 비토님의  댓글을 이제서야 자세히 읽었네요. 경제학에서는 '유권자의 합리적 무지'라는 용어로 투표에서의 공공선택이론을 설명합니다. 어느 후보나 정당을 열열히 지지하지 않는 대중들은 자신의 한표에 대해서 무력감을 느끼는 것이 보통입니다. 어짜피 자기가 누구를 찍건 투표의 결과에는 영향을 못 끼칠 거란 (합리적인) 생각을 하는 것이 일반적이기 때문입니다. 자신이 맡은 일에 소홀하면 그 책임은 자신이 져야 하지만 시간을 들여서 후보자를 분석하는 일은 선겨결과와는 무관한 시간낭비이고 그 결과를 자신이 책임질 일도 없다는 생각에서 입니다. 그래서 그런 유권자들은 자신이 진정 원하는 정책을 약속하는 후보자를 찾기 위해서 일부러 공부하는 따위의 일은 하지 않습니다.
지난 대선에서 MB를 찍은 사람이 후회하는 것을 가끔씩 접하곤 하는데, 후회라고 해봤자 그냥 던지는 말이지 진심으로 자신을 자책하는 사람은 거의 찾을 수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어짜피 500만표 차이가 났는데 자기가 다른 사람을 찍었다고 해서 뭐가 달라졌겠냐는 생각이어서, 자신의 잘못된 투표때문에 자신이 손해본 것은 하나도 없다는 분위기였습니다. 만일 자신의 일을 그르치면 자신히 그 댓가를 치루는 것과는 달리 말이지요. 안타깝지만 어쩔 수 없는 현상입니다.
그리고 한나라당이 도저히 불가능할 것 같은 정권상실을 맞닥뜨린 건 외환위기 때문이 아니라 DJT연합, 이회창 아들의 병역면제, 그리고 가장 큰 이유인 이인제가 출마해서 500만표를 가져갔기 때문입니다.


<발제글 2>공공선택이론과 교육감선거 - 물뚝심송

지난번 교육감 선거는 여러가지 면에서 재미있는 이면이 많았던 선거같습니다. 이에 대해 공공선택이론의 입장에서 해석을 해 주신 로미오님의 의견은 참 의미있게 잘 읽어 봤습니다.

사실 그 동네 업계에서는 대부분의 구성원들이 그게 "공공선택이론"인 줄은 잘 모르지만 비슷한 분석을 해 내곤 합니다. 그러니까 사회적 이익과 관련된 정치행동에 있어서, 확실히 큰 이해관계가 걸려있는 소수가 결정을 좌우하게 된다는 거죠.
이 부분은 제가 이해한 공공선택과는 조금 더 달라지는 부분이 있는데 아직 저한테도 잘 정리가 안된 부분이라서 잘 설명이 될까 모르겠습니다.
미국 축산협회의 사례는, 큰 이해관계가 걸린 소수와 작은 이해관계가 걸린 다수의 대결에서 큰 이해관계가 걸린 소수가 정책을 결정해 내는 메카니즘이 작동되고 있는 거죠. 이게 공공선택의 핵심을 보여주는 사례로 매우 적합하다고 생각됩니다.

그러나, 이번 교육감 선거에서는 물질적 이해관계가 걸린 소수와 정신적 이해관계가 걸린 소수간의 싸움으로 보는게 더 적절할 듯 합니다. 양쪽의 절실한 정도는 유사하거나 후자가 더했다고 봐야 할 겁니다. 대략, 교육문제와 강남아파트값에 관심이 있는 전자그룹과, 이명박에 대한 분노와 사회에 대한 애정이 걸린 후자그룹이라는 얘기죠.
사실상 대부분의 유권자들은 이 두 소수그룹과는 달리 교육감 선거에 관심을 보이지 않았고, 이 사실은 지극히 낮은 투표율로 입증이 된 것입니다.
이런 관점에 대해서 생각을 하다가, 전혀 엉뚱한 부분으로 연결되는 중대한 문제를 발견하고 말았습니다.

자본주의 사회하에서의 투표가 과연 민주주의를 지켜줄 능력이 있는가 하는 부분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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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미오님도 지적하셨지만 투표는 절실하거나 심드렁하거나 상관없이 무조건 일인 일표입니다. 이는 권력을 보유한 구성원의 전횡을 막아서 민주주의의 가치를 지키고자 하는 아주 중요한 원칙인 평등선거의 개념에 의해 만들어진 제도죠.

그러나 이 평등선거의 원칙은 자본주의하에서의 사회적 권력의 척도인 자본의 보유량에 따라 그 효과가 떨어져 버립니다. 어떤 방식으로 그 효과가 무력해 지냐면, 보다 큰 이해관계가 걸린 자본보유 유권자의 경우, 단순히 한표를 찍는데 그치지 않고 어떤 경로를 통해서라도 선거판에 영향을 줄 수 있는 쪽으로 자본을 사용하게 된다는 겁니다. 즉, 공식,비공식적인 후원금을 지불함으로써 그렇게 한다는 얘기입니다.

즉, 자본을 많이 보유한 기득권의 이해관계에 종사하는 출마자의 경우, 보다 풍족한 물질적 환경을 갖추게 되고, 이는 백퍼센트 공영선거의 이상의 구현되지 않는 한, 출마자간의 재력에 따른 선거운동의 품질 격차를 유발하게 됩니다.

즉, 현수막을 걸어도 몇개를 더 걸고, 광고를 해도 몇번 더 하고, 찌라시를 찍어도 몇만장을 더 찍게 되고, 그 찌라시를 돌릴 일당선수들도 몇십명을 더 고용하게 된다는 얘기죠.
결국 자본은 평등선거의 원칙을 무력화 시킬 수 있게 됩니다.
이를 보완하기 위한 그 어떤 아이디어도, 결국은 자본의 위력앞에 무릎을 끓게 될 겁니다.
이 아이디어에서 조금만 더 살을 붙이고 불그무레~ 한 근거들을 추가한다면 우리는 이런 결론을 얻게 됩니다.

자본주의 체제를 선택한 사회에서 민주주의의 구현은 개소리다.

* 자유민주주의 같은 이상한 어휘가 돌아다니는 사회는 더 말할 것도 없고..


- 물뚝심송@찌질넷


물뚝심송 : 아.. 써놓고 보니 중간에 "백퍼센트 공영선거"라는 애매한 조건이 하나 더 붙어 있군요. 이 백퍼센트 공영선거라는 조건은 역시나 자본주의 사회하에서는 절대 구현불가능한 보조장치에 불과합니다. 그게 왜 그런지는 이하 여백이 너무 부족해서 입증해 드릴 수가 없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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