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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기독교에 대한 부정적 이미지가 점점 확산되고 있다. 이승만의 친일세력중용과 독재가 국민적 저항을 불렀었다. 김영삼의 삼당야합과 세계화, 그리고 외환위기 초래가 민중의 삶을 극악하게 파괴하였다. 이명박 정권의 종교적 편향성에 더하여 집권초기 수 많은 실정이 국민의 분노를 사고 있다. 이들의 특징은 모두 한국개신교의 장로라는 사실이다. 한기총으로 대표되는 개신교의 절대적 지지를 받았다는 점도 또한 공통점이다.
 
기독교 신앙의 본질.
 
기독교 신앙의 본질은 인류의 구원이다. 신의 대가없는 은혜로 말미암은 구원을 말한다. 기독교가 추구하는 구원은 단지 영적 구원만을 말하는 것은 아니다. 내세를 염원하고 갈구하는 신앙이지만 현세의 인류를 고통속에 방치할 수는 없는 것이다. 오로지 영적 구원만을 추구하는 것이라면 기독신앙은 인류에게 대단히 황폐한 사막처럼 여겨질 것이다. 현세의 인류구원에 관심이 없는 종교는 이 땅을 오아스스없는 사막으로 만들고 말 것이다.
 
성서에 나오는 주기도문의 일부에는 "...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 이룬 것같이 땅에서도 이루어 지이다." 라고 명확히 말해주고 있다. 이 말은 내세에서의 영적 구원만을 추구하는 것과 거리가 멀다. 일단 아버지 즉 신의 뜻이 하늘에서 이룬다는 것은 영적 구원의 세계를 말하는 것이다. 그런데 땅에서도 그 것이 이루어지라고 기도하고 있다. 그러니 기독교의 본질은 현세의 삶조차 구원코자 하는 의미를 포함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인류구원은 바로 사랑을 통해서 가능한 것이다.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과 같이 너희도 네 이웃을 네몸과 같이 사랑하라."고 하였다. 이웃을 사랑하지 않고는 이웃인 인류를 한 사람도 구원할 수가 없다. 사랑하지 않고는 진정으로 누구도 구원에 이르게 할 방법이 없다. 영적 구원이 영혼에 대한 사랑으로 시작되는 것이라면, 현세의 구원은 현세의 삶에 대한 사랑을 통해서 비로서 시작될 수 있다.
 
정리하면 기독교 신앙의 목적은 인류구원이다. 내세를 위한 영적 구원만의 문제가 아니라 현세를 위한 삶의 구원이 함께 추구되는 것이다. 그리고 모든 구원의 시작은 신의 인류에 대한 사랑, 인류의 상호간의 사랑에서 비롯되는 것이다. 그러니 기독교가 사회문제에 관여해선 안된다는 주장은 근거가 없는 주장이다. 오히려 사회적 문제들에 대하여 기독교는 적극 나서서 인류애를 발휘하는 것이 지당하다.
 
한국개신교의 문제점.
 
한기총으로 대표되는 한국 개신교는 수십년의 군사독재 시절에 민중의 아품을 외면하였다. 기독교의 본질을 영적 구원에 있는 것이라며 저 멀리 있는 피안의 세계만이 기독교가 추구할 세상이라 하였다. 종종 민중과 아품을 나누고 사회문제에 참여를 주장하는 목회자들을 비난하고 비판하였다. 종교적 순수성을 상실했다며 질타하기에 여념이 없었다. 현세의 문제는 기독교 신앙의 목적이 아니라는 거짓된 신념에 기반하여 침묵하는 것이 옳다고 주장한 것이다.
 
그런데 지금은 많이 달라졌다. 그 들이 그렇게도 비판하던 현실참여에 매우 적극적인 태도로 바뀐 것이다. 그들의 표변한 태도를 설명하는 하나의 단어는 바로 반공이다. 세계화의 실패와 외환위기로 인한 국가부도의 사태를 초래하여 수구세력이 정권을 상실한 때부터 한기총의 정치적 입장이 적극적으로 변한다.
 
국민의 정부와 참여정부의 집권기 10년동안 한기총은 맹활약을 하였다. 논리는 아주 간단하다. 아니 단순무식하다. 국민의 정부와 참여정부는 좌파 빨갱이들의 정권이다. 기독교는 좌파 빨갱이들과 공존할 수 없다. 그러니 좌파빨갱이들을 척결하는데 적극 나서야 한다는 것이었다. 실제로 지난 10년간 한기총이 나서서 정부정책에 비난을 퍼붓고 집회를 열기도 하는 등 열성을 보였다. 그리고 다시 과거 독재자들의 계보를 잇는 세력이 집권을 하였다. 한기총은 상당한 공헌을 한 셈이다.
 
한국교회의 사회참여는 매우 정당하다. 당연히 중요한 사안마다 참여해서 옳은 목소리를 내는 것이 지극히 당연하다. 그래야 소위 말하는 전인구원의 사역을 잘 감당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영적 구원만이 아니라 현세의 인류구원도 기독교의 중요한 사역이 되어야 마땅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한기총은 틀렸다.
 
첫째, 표변한 태도에 문제가 있다. 극악한 독재자들의 폭압에 침묵하는 것이 옳다고 했다. 그런데 민주화가 이루어지고 수평적 정권교체가 이루어진 상황에서는 느닷없이 사회참여에 적극성을 보였다는 점이다. 논리적으로 아무리 살펴봐도 이해할 수가 없는 태도이다. 오로지 설명할 수 있는 것은 한기총이 정치적으로 독재자들과 그 후예들을 지지하기 때문이라는 이유 밖에 없어 보인다.
 
둘째, 기독신앙의 중심은 사랑이다. 신에 대한 맹목적 사랑만이 아니라 "네 이웃"인 인류에 대한 사랑이다. 특별히 예수의 삶속에서 사회적 약자에 대한 사랑을 배워야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회적 기득권층을 편들고, 그 들의 이데올로기적 주장을 앞장서서 설파하고 있다. 되묻고 싶은 것은 바로 이점이다. 당신들의 이웃은 소외받고 가난하고 병들고 나약한 자를 제외한 개념인가? 그렇다면 당신들의 신앙의 대상인 예수의 삶과는 전혀 반대되는 길을 가고 있는 것이다.
 
셋째, 패거리즘이다. 매우 배타적인 태도로 타종교를 배척하고 한기총의 교리만을 강요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서로 기득권을 나누고 확대재생산하는데 열중한다. 장로를 대통령으로 만들기 위해서 부단히 노력을 하였다. 그렇게 당선된 대통령은 소위 말하는 고소영 내각에 대단한 집착을 보였다. 강만수 기획재정부 장관이 그 예이다. 경찰의 총수는 정권안보에 물불을 가리지 않을 뿐 아니라 경찰복음화 대성회 포스터에까지 당당히 등장한다. 종교적 편향성을 가진 정권을 세우기 위해서 그렇게 노력한 까닭을 알 것같다.
 
한기총이 종교적 순수성을 상실했다고 비판할 생각은 없다. 기독신앙이 본질적으로 인류구원을 목적으로 한다면 사회참여와 일정 수준의 정치성을 배제할 수는 없는 것이다. 문제는 바로 약자의 편에 서지 않고 기득권층의 편에 서서 약자들을 억압하고 있다는 점이다. 편협하게 자신들의 신념을 일방적으로 강요하는 방식을 사용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미 한물간 색깔론으로 '좌파 빨갱이'사냥에 열을 올리고 있다는 점이다. 예수의 삶에 스스로의 행동들을 비춰보기를 바란다.
 
왜 기득권층의 편에 서는가?
 
얼마전 SBS의 '신의 길, 인간의 길'이라는 프로그램이 방송됐다. 한기총의 반발도 있었고, 방송말미에 한기총의 반론도 포함되었다. 한기총의 위력이 막강한 한국사회의 특성을 반영하듯 프로그램의 본래의 취지에 맞게 철저히 파헤치지 못한 측면도 있다. 그러나 기독신앙의 본질에 맞춰 현재의 한국교회를 비춰볼 나름의 기준은 제시한 것으로 평가할 수 있겠다.
 
관심이 가는 대목은 바로 미국의 교회와 유럽의 교회를 비교하는 대목이다. 대체적으로 선진국일수록 교회가 그리 번창하지는 못하는 것이 현실이다. 특히 유럽의 경우 교회가 나이트 클럽으로 변하고, 이슬람 이민자들의 기도장소로 변한 장면은 인상이 깊었다. 유럽의 교회는 극심한 침체의 늪에 빠져 있었다. 뿐만 아니라 점점 그러한 경향은 강화되고 있었다.
 
반면 미국의 경우 교회가 스스로 사람들의 기호에 맞춰서 변화를 시도하였다. 교회가 경건한 기도와 예배의 장소가 아니라 마치 재미있는 포퍼먼스와 취미생활처럼 보여질 정도였다. 과거에 비하여 침체된 것도 사실이지만 유럽에 비하여 여전히 교회가 성황을 이루고 있었다. 물론 사람들의 기호에 맞추려는 노력이 일조한 것은 분명한 사실일 것이다.
 
그런데 좀 더 흥미로운 점은 바로 사회경제적 환경과 교회의 흥망이 밀접한 관련이 있다는 부분이다. 유럽의 경우 사회적 부가 증가하였을 뿐 아니라 상당한 수준의 사회복지가 잘 갖춰졌다. 유럽내에서도 국가간 차이가 극심하긴 하지만 대체로 미국에 비하면 대단히 훌륭한 수준의 복지제도를 운영하고 있는 것은 분명하다. 그렇게 삶이 절박하지 않고 여유로운 나라에서 교회가 흥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아마도 인간이 스스로를 현세의 삶에 있어서는 이미 구원해버린 것이다.
 
반면 미국의 경우 과거 그나마 좀 있던 여러가지 복지제도가 거의 허물어지고 퇴보하였다. 극심한 시장경쟁의 원리를 신봉하는 흐름이 강하다. 약육강식의 치열한 정글의 법칙이 지배하는 사회이다. 낙오되고 패배하는 사람들이 매우 많다. 때로는 삶의 무게에 지쳐서 모든 것을 포기하고 싶을 정도로 힘겨운 삶을 연명하고 있는 사람도 있다.
 
그들은 여전히 스스로를 구원하지 못하고 있으며 누군가의 구원의 손길을 필요로 하고 있다. 미국교회의 상대적 성황은 바로 이점 때문이다. 물론 교회가 사회일반의 기호에 맞춰 변화한 점도 작용을 했을 테지만 그 것만으로는 모두 설명할 수가 없다. 미국교회들이 70~80년대에 쇠퇴하는 기미를 보이다 다시 조금 살아나는 것도 레이거노믹스로부터 시작된 사회복지의 축소와 감세정책의 영향을 받은 것이 아닌가 여겨진다.
 
바로 한국교회의 대세라 할 수 있는 한기총이 기득권층과 이해를 같이 하는 이유를 짐작할 수 있는 대목이 아닐 수 없다. 한기총은 교회가 황폐화된 유럽을 원하지 않는다. 교회가 상대적으로 번창하는 미국을 원하는 것이다. 아니 미국보다 더욱 번창하는 한국을 더욱 그방향으로 몰아가고 싶은 것인지도 모르겠다. 기득권 층이 주장하는 시장의 자율이 무한대로 확대되는 사회, 정글처럼 극심하게 경쟁하여 패배자를 양산하는 사회를 원하는 것은 아닐까?
 
인류가 스스로 사회복지와 나눔을 실천하며 사랑을 나누면 스스로를 구원하는 것이 된다. 현세의 구원이 성취되면 사람들은 내세에 대한 두려움도 덜 느낄 것이다. 인류가 스스로를 구원하는 일을 한국교회 기득권층이 바라지 않을 수 밖에 없는 이유이다. 말하자면 신의 명령인 인류구원을 교회가 가로막고 있는 셈이다.
 
인류가 스스로를 구원하지 못하는 세상.
 
얼마전 이명박 정권의 초대 복지부 장관을 역임했던 이의 주장이 흥미로웠다. 복지의 문제는 신앙심이 부족하기 때문에 발생한다는 주장말이다. 증세와 복지의 확대는 옳지 않고, 인류를 구원하지도 못한다는 주장이다. 정글의 법칙이 지배하는 사회속에서 패배하는 사람들, 사회적 약자들은 바로 신앙심에 의존하여 살아야 한다는 주장을 했던 것이다.
 
과연 그렇다면 무한경쟁의 효는 누가 누리는가? 바로 상류층이 누리게 된다. 복지축소와 감세란 바로 가진 자를 더욱 많이 가지게 만들고, 약자를 죽음으로 몰아가는 정글의 법칙이다. 지금 한국사회의 기득권층이 주장하는 무한경쟁의 원리가 바로 그 것이다. 물론 한국교회는 바로 그들의 논리에 야합하여 성장을 구가하고 있다. 과연 그런 사회가 좋은 사회일까?
 
경쟁이 지나치게 제약된다면 효율이 낮아져서 다 같이 못사는 사회가 될 가능성을 부정하는 것이 아니다. 적절한 수준의 경쟁조차 없애고 모두 동등하게 나눠갖자는 주장을 하는 것도 아니다. 경쟁하되 공정한 룰을 만들어서 그 룰의 지배아래 경쟁하자는 것이다. 그리고 경쟁에서 패배하여 낙오하거나 심하게 상처를 입은 자들은 국가가 나서서 보호해주자는 것이다. 국가의 보호도 넉넉하고 충분하게 하자는 것이 아니다. 다시 회복하여 경쟁의 대열에 재도전할 수 있는 수준으로만 하자는 것이다. 그런 사회가 좋은 사회가 아니겠는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않고 물고 뜯는 사회, 잠시 패배하여 뒤로 처지면 곧장 하이에나 떼처럼 몰려들어서 완전히 뜯어 먹어치우는 사회는 좀 아니지 않은가? 과연 그러한 경쟁을 강조하는 당신이 잠시 삐끗하여 패배할 수도 있음을 왜 인정하지 않는가? 그렇게 살벌한 경쟁과 패배하는 순간 비참한 죽음으로 내몰려야 하는 사회는 바로 현세의 지옥일 것이다. 지옥이 달리 있겠는가?
 
영적 구원은 신앙심과 신의 영역일 것이다. 현세의 인류구원은 신이 나서서 모두 해치울 수는 없는 일이다. 인류가 스스로 나서서 스스로를 구원해야 하는 것이다. 기독신앙의 대상인 신도 바로 그렇게 스스로를 서로 사랑하며 구원하라고 명령하고 계신다. 현세의 구원조차 인류가 스스로 해결하지 않고 신에게 요구하는 종교라면 그 것은 이미 무당보다 못한 것이다. 잡신의 종교보다 나을 것이 없다.
 
인류가 스스로의 삶을 구원하지 못하도록 체계적으로 막아 나서는 것은 이 땅위에 지옥을 구현하는 것이다. 이 것은 사람의 의무를 다하지 못하는 것일 뿐 아니라 신의 명령을 거부하는 행위이다. 하늘에서 이룬 것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도록 하는 것이 진정한 기독교 신앙의 목적이어야 한다. 부디 이땅에 지옥을 구현하려는 자들에게 심판이 있을 지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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