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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이야기 : 대학시절..

문학 2007/11/16 11:17 by 알밥





78년에 나는 고등학교에 입학했고, 내가 다니던 신일고등학교는 그 당시에 삼양동, 도봉동, 수유리, 종암동 등 무척이나 가난했고 거칠었던 동네의 학생들이 대부분이어서, 학창 시절엔 끔찍했던 사건도 가끔씩 있었고, 내가 친하게 지냈던 급우들 중 몇 명은 정말 ‘말죽거리 잔혹사’라는 영화처럼 방과후엔 가발을 쓰고 무시무시한 동네를 기웃거리곤 했었다. 매주 몇 차례씩 교실에서는 큰 싸움이 벌어졌고 흉기질을 해서 퇴학당한 급우도 있었고, 영화에서처럼 한번 쪽팔림을 당하면 학교생활 끝이라는 말도 유행하던 시절이었다.

실제로 싸움에서 망신당한 친구들이 가출해서 학교에 다시 안 나타난 일들이 있었다. 나는 그 당시엔 완전 모범생(?)으로 현재까지도 싸움 한번 욕 한번 안하고 살고 있지만, 흔히 말하는 문제 학생들과 참 신기할 정도로 친하게 지냈었다.

나는 경제학 전공 81학번, 흔히들 말하는 386의 맡형뻘 되는 세대이다. 대학 입학 후 그 전부터 독서를 좋아하던 나는 고등학교 동창, 선배들과 한양대 근처에서 독서 서클 활동을 시작했다. 문학뿐 아니라 사회과학 서적들도 관심 있게 읽고 토론했고 그로 인하여 그동안 내가 배워온 역사와 가치관 그리고 선과 악에 대한 기존의 관념이 상당히 흔들리던 중, 강제로 서클이 폐쇄되고 클럽장인 선배가 연행되는 것을 목격하고 나는 자연스럽게 소위 "운동권"에 발을 들여놓게 되었다.

그 시대 대학생들을 크게 몇 부류로 나누면, 양심에 따라 행동하며 온몸으로 저항을 하는 학생들, 시대의 아픔을 뒤로하고 자신의 일에 나름대로 충실히 열중하는 학생들, 향락에 빠졌다고 여겨질 정도로 술집, 당구장, 나이트클럽을 들락거리며 방종 하는 학생들, 생각과 행동의 괴리감으로 끝없이 자학하는 학생들... 이런 식으로 분류가 가능하리라 생각하는데, 나는 누구 못지않게 그 당시 군사정권에 반대하면서도 학생들의 폭력적 시위문화와 비도덕적 학생생활에 매우 비판적이어서 운동권에서도 크게 환영받는 입장이 아니었다.

당시 우리 세대 특히 내 학번들에겐 항시 현장으로 가야한다는 강박관념이 내재되어 있었지만, 현장 투쟁은 나의 방식에는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해서 나는 현장에 발을 들여놓지 않았다. 현장에 어울리는 사람이 있다. 나보다 두살 아래인 동생은 분명 거기에 해당되었다. 대학에 입학한지 20년이 넘었지만 당시도 지금도 한결같이 현장에서만 활동한다. 물론 거기엔 커다란 자기희생을 동반한다. 내 친구들 중에도 불행해진 동료들 참 많다. 시대의 아픔이라 하기엔 그들의 희생이 너무도 컸다.

운동권 학생들이 뜻을 모아서 함께하기로 약속했던 1학기 군사교육 기말고사 시험거부는 결국 나를 포함해서 경제과에서 다섯 명, 학년 전체에서 열 몇 명의 학생들만 시험을 치르지 않아서 약속을 이행한 학생들은 학적변동 및 강제입영이라는 매우 절박한 처지에 처하게 되었다. 공동 시험거부라는 사전약속을 지키지 않은 친구들에게 배신당한(당시 대부분의 동기들은 말뿐인 시험거부인걸 처음부터 알았다고 한다) 나는 그 사이에 아주 친한 친구를 사귀게 된다.

그 친구와 부모님의 간절한 설득으로 기말고사를 거부한게 아니라 사정상 못 치뤘고, 3 학년 1 학기에 군사교육을 재수강 하겠고 차후 군 입대 시 교련교육 수강자가 받는 복무단축 혜택을 포기하겠다는 각서를 쓰고 부모님께서 학군단에 오셔서 도장을 찍어서 나는 결국 강제입영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이번엔 내가 배신한 셈이다)

그 후 1년 반 동안 그 친구와 내 평생 가장 행복했던 시절을 함께했고 군 입대 문제로 나와 아주 서먹해진 그 친구는 83년 6월에 카투사로 입대를 한다. 그 친구는 8월 18일 자대로 향하는 기차에서 추락사했다. 그 뒤로 내가 경제학과에는 거의 발길을 끊었고, 교양과 수학과목으로 학점을 채우기 시작했다. 경제과 친구들과 멀어진 것은 아니었지만 그들과 함께 경제 수업을 듣거나 웃고 떠들 수가 없어서였다.

수학 과목을 들으면서 난생 처음으로 여학생에게 말을 걸어보았다. 사관학교에 다니는 남자친구에 대한 일편단심으로 거의 전교생에게 유명했던 여학생이다. 그녀가 일년 전에 그 남자친구와 헤어지고 아직껏 비탄에 빠져 있다는 걸 친구를 통해서 알고 있었다. 불현듯 그녀와 사귀고 싶다는 생각에 빠져들게 된다. 고백하건데 그녀는 내가 고등학교 시절부터 상상 속에서 눈부신 사랑을 꿈꿔왔던 나의 이상형과는 거리가 있었다. 어쩌면 나는 나를 둘러싸고 있는 모든 여건에 숨이 막혀서 그 탈출구를 찾으려고 그녀와 사귀고 싶었던 것인지도 모른다. 문학 소녀였고, 생각도 깊었던 그녀였기에 적어도 그녀라면 내 심정을 잘 이해할 것 같았다.

그녀와 사귀는 것은 짐작대로 전혀 쉽지 않았다. 무엇보다도 그녀에겐 사귀는 남자가 있었다. 육사 신문을 편집하는 동갑내기 생도였다. 사관생도에 대한 그녀의 맹목적 신뢰는 신앙에 가까웠다. 물론 나는 그녀가 현재의 남자친구를 사랑하지 않는 걸 알 수 있었다. 직접 묻기까지 했다. 그녀는 거짓말하기 싫다는 말로 대답을 대신했다. 하지만 헤어진 남자친구에 대한 그녀의 사랑은 철옹성 같아서 바늘구멍 같은 틈도 보이질 않았다.

그렇게 4학년 일학기의 방학을 맞았다. 나는 그녀가 논현동의 큰 저택에 입주 가정교사로 살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마침 우리 집도 이사 갈 준비를 하고 있었다. 나는 하늘이 나에게 준 모든 수단과 능력을 다 발휘해서 우리 집을 그녀의 집에서 걸어서 5 분 거리가 되는 곳으로 이사할 수 있게 하였다.

개학 직후 우연히(?) 학교 가는 버스를 기다리다 그녀를 만난 후 한 학기 동안 그녀와 등, 하교를 같이 하게 된다. 수업도 세과목을 같이 듣게 된다. 외교관으로 유럽에 오래 계시다가 귀국하신 작은 아버지도 논현동으로 이사 오게 된다. 그 기회에 나는 내 사촌 동생들의 과외 선생으로 그녀를 소개한다. 그 당시 공무원이 자녀 과외를 하다 적발되면 그날로 해임되던 시절이다. 더군다나 당시 작은 아버지는 사회지도급 유명인이어서 절대적으로 모든 것을 신뢰할 만한 가정교사가 필요한 시점이었다.

그것으로 그녀는 자연스럽게 우리 가족, 친척들과 잘 알게 된다. 어머니 수필 중 "내사랑 엄지"의 첫 출발점이 바로 이 시기이다. 그 후 여러 가지 우여곡절을 겪고 난 후, 그녀는 육사신보 편집장 생도에게 일방적으로 헤어짐을 통보한다. 내가 평생 동안 제일 미안한 마음을 갖고 있는 사람이 바로 그 생도이다. 내가 생각해도 너무 멋지고 올바른 생도여서 열등감도 많이 가졌었는데, 그녀는 그와 헤어짐을 택하고 나의 집요한 구애를 받아들여서 나하고 사귀기로 한다. 단 나하고 결혼은 안하겠다는 것을 전제로...

그 당시 난 그녀에게 온갖 무리한 상황을 연출하면서 까지 온갖 정성을 쏟아 부었는데, 그 이유가 사랑이라기보다는 내 허전한 마음을 모두 그 곳에 집중했을 따름이다. 그녀의 마음속엔 나보다 훨씬 예전의 남자친구가 많을 거라고 확신했고 나 또한 군에 가서 비극을 맞은 내 친구가 내 맘속에 더 큰 부분을 차지하고 있었다.

내가 여자친구가 생겼다는 것에 경제과 동기 중 여럿이 그녀에 대해서 비관적인 말을 내게 서슴없이 했고, 또 수학과 82 학번을 중심으로 나를 비방하고 배척하는 언행들이 나에게 쏟아졌다. 그녀를 한번만 더 비난하면 절교하겠다고 나는 경제과 동기들에게 경고를 했고 정말로 그걸 실천했다. 나를 비난하는 수학과 동기와 후배들에겐 진심어린 친절과 애정을 베풀어 결국엔 봄에 눈이 녹듯 그들과 친해질 수 있었다.

이렇게 나의 대학생활의 마지막 학기와 마지막 방학이 지나갔다. 그때까지 내가 미처 깨닫지 못했던 것은 여자의 사랑이 얼마만큼 깊은가 하는 것이다. 그녀와 사귀면서 온갖 정성을 다하면서도 난 그녀가 나에게 주는 사랑엔 큰 관심이 없었다. 내 마음의 문을 반쪽만 열어 놓았던 것이다. 그녀의 사랑이 얼마만큼 거대한지 완전히 깨닫기까진 그 후 몇 년이 더 걸렸다.

1985년 2월에 경제과를 졸업한 후 나는 진로에 대해서 큰 고민을 하게 되었다. 군대도 안 간 상태로 취업은 내키지도 쉽지도 않았고, 경제학에 흥미를 잃은 지 오래여서 대학원 진학도 포기했다.
친구를 잃은 상태로 신경성 위장장애가 극에 달할 때 받은 신체검사에서 나는 행정 방위병으로 판정되어 육본이나 국방부 같은 행정부대에 18 개월간 출퇴근 하면서 근무하도록 되어 있었고, 입대 영장을 기다리는 동안 다시 수학과 4 학년으로 복수전공을 신청해서 여자친구와 같이 실해석학과 위상수학을 수강했고 나머지는 이 공대 교양필수 과목을 수강하고 있었다.

매우 불확실했던 미래에 대한 걱정은 잠시 접어두고 그 당시 거의 모든 시간을 여자친구와 보냈던 시절이었다. 개강하고 한달 후 그녀는 교생실습을 나갔고, 피곤한 교생실습에다 과외 그리고 저녁 늦게 학교 도서관에서 위상수학과 실변수함수를 학교 진도에 맞게 혼자서 공부하는 무리한 일정으로 한달을 보낸 후, 실해석학 수업 듣던 중 과로의 후유증으로 쓰러진다. 병원에 입원해서 받은 검사 결과는 아주 뜻밖에도 결핵 2기의 후반부라는 놀라운 진단이었다.

발병 시기는 대략 2 년전, 원인을 짐작컨대 실연으로 인한 쇠약함과 스트레스였을 것이다. 그 때 과로로 쓰러졌던 것이 다행이었다. 안 그랬으면 그 당시로선 치료하기 훨씬 어려웠던 결핵 3기까지 갔을 것이다. 간신히 교수님들께 사정해서 기말 시험 없이 학기를 마쳤고 곧바로 치료에 들어간다. 워낙 약한 체력과 소화력에 독한 약을 먹어서 몸도 매우 쇄잔해졌으나 그래도 굳은 의지로 차츰 결핵을 치료해 나아갔다. 다음 학기에 학교를 다녀도 된다고 의사가 말할 정도로 치료 경과가 좋았다. 그렇게 1 학기의 방학이 거의 지나갈 무렵 나는 입영 통지서를 받게 된다.

약 40 일 후에 경기도에 52 사단에서 3 주 훈련을 받고 그 당시 용산에 위치한 육군본부에서 행정병으로 근무하라는 통지서이다. 지금의 전쟁기념관 자리이다. 그곳은 논현동에서 학교까지의 꼭 중간지점에 위치한 곳이어서 육본에서 퇴근 후 학교로 가서 그녀와 같이 집으로 올 생각에 나는 흐뭇할 정도로 담담했다.

그녀는 달랐다. 달라도 크게 달랐다. 3주 동안 이별해야 한다는 생각에 거의 식사도 못할 정도로 슬픔에 잠겨 있었다. 그래서는 안된다는 것을 알면서도 어쩔 수 없다고 했다. 그런 그녀가 너무 걱정이 되어서 도저히 안심하고 3 주 훈련을 받으러 갈 수가 없을 정도였다. 월요일에 들어가서 세번째 주 토요일까지 훈련받게 되어 있어서 사실은 19 일이다. 훈련 받는 19일 동안 혼자 남겨둔 여자친구에 대한 걱정 때문에 거의 제정신이 아닐 정도였다.

3 주후 훈련을 마치고 조마조마하는 맘으로 돌아왔더니 그녀는 휴학을 한 상태였다. 41 kg 였던 몸무게가 36 으로 되어있었고 아마 내가 하루 이틀만 늦게 나왔어도 정말 큰일이 났을 정도로 거동조차 못하는 상태였다. 결핵치료에 실패했고 결핵균이 약에 대한 내성이 생겨서 훨씬 독하고 부작용을 동반할 수도 있는 새로운 약으로 처음부터 다시 치료해야 했다.

그 때 나는 평생 다시는 하루도 그녀와 떨어져 있지 않을 것이라고 하늘에 맹세한다. (아직까지도 난 내가 집을 사흘만 비우면 가정에 큰 우환이 생길 것 같아서 맘 놓고 출장이나 해외 학술회의에도 못갈 정도로 그 당시의 절박한 심정은 내 가슴에 못이 되어 박혀있다.)
그리고 내 모든 정성과 노력을  그녀가 완치되는데 최대한 힘이 되는 것에 바치기로 결심한다.

그녀의 목숨은 나와 동일하다고 어쩌면 더욱 소중하다고 온몸으로 소름끼칠 정도로 느끼게 된다. 이 시점부터 먼 훗날 내가 모교에 부임하는 2000년대 초까지 내 인생은 단 한사람을 위해서 존재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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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로미오님께서 2007년 8월 15일에 본인의 블로그에 발표하신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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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꼴초마왕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흠흠;; 놀랍군.. 요즘 젊은놈들한테는 저런거 절대 기대못한다.. 아아 낭만의 시절이여~~~~

    2007/11/16 15:18
  2. 박윤정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로미오님의 지난이야기 감동적으로 느낄수 있어 감사합니다..덕분에 좋은 시간을 가질수 있었어요...늘 좋은 일들만 있으시길....행복하세요....^^*

    2007/11/24 12:42
  3. 김지현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아 정말. 어쩌다가 내 사랑 엄지를 읽었는데
    설마 이게 실제일까 생각했는데 실화이네요.
    너무 감동이었구요. 모두 부러웠습니다.
    근데 이 글을 읽다가 문득 생각하니
    제가 신일고등학교 근처에 살고 있어서
    더 신기하고 재밌네요.
    정말 저도 저런 멋진 젊은이가 되고 싶네요^^

    2007/11/24 13:37
  4. 냥이씨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어머님의 글을 읽고 여기까지 왔습니다..
    그 열정적인 사랑과 신뢰에 질투까지 나네요..
    아름다우세요..

    2007/11/24 15:27
  5. 하나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방금 어머님 글 읽고 릭크되어있는 님의 글을 읽었는데 눈물이 핑 도네요~~
    81년도 대학교 입학하셨으면 지금은 제 아버지뻘 되시겠죠ㅋㅋ?
    너무 낭만적입니다. 멋져요~~~~~~~!!!

    2007/11/24 16:39
  6. 행인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아저씨 어머님은 정말 훌륭하신 분이네요..
    좋겠다~~~

    2007/11/24 17:21
  7. 닥터김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사랑합니다 이세상을 그리고 모든이들을

    2007/11/24 18:13
  8. 부럽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이렇게 사랑받는 그 여자분이 부럽고..저도 절 많이 사랑해주는 남자를 만났으면 좋겠어요^^

    2007/11/25 19:28
  9. 부럽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이렇게 사랑받는 그 여자분이 부럽고..저도 절 많이 사랑해주는 남자를 만났으면 좋겠어요^^

    2007/11/25 19:28
  10. 밝은 태양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나역시 아들을 둘이나 가진 엄마이며 이제 며느리를 맞아야 할 이즈음에 어머니의 용기, 그래요 이건 용기입니다. 그런 결단을 내린 어머니에게 찬사를 보냅니다. 지금 저보고 그럴 수 있는가 물으면 아마 아니라고 하지않을까 싶네요.

    2007/11/25 23:38
  11. young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저 역시도 어머님 글을 먼저 읽고 이렇게 오게 되었습니다.
    그 당시에 저는 초등학교에 다니던 나이였군요..
    누구에게나 사랑은 쉽지 않은거 같애요 저역시 지금은 한남자의 아내요 한남자아이의 어머님으로 변해 있습니다

    지금 상황이 나에게도 있을수 있는일이지요 ...저라면 어떨까 싶네요
    쉽지 않은 어머님의 사랑에 감동스럽구요 ..저도 옛날추억이 잠시 머리를 스쳐지납니다..
    날씨가 이젠 제법 겨울티를 내네요 모두 감기 조심하시옵고 건강하시옵소서..

    2007/11/26 03:31
  12. 가이아나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사랑받기를 바라는마음 한쪽으로 전 제 사랑이 변해가는것을 감지하고 있었어요 남편에게 기대기만하는 저를 눈치 채면서 남편의 사랑이 예전만 못하다고 느꼈는데 어느날 문득 정말 어느날 문득 남편의 사랑보다는 내가 변했구나하는 생각이 들더군요. 이렇게 영원한 사랑을 약속한 혼인서약에서의 제 맹세가 희석이 되는것을 보면서 영원이라는말을 거부했는데 어머니의 글이 다시금 희망을 주시네요
    영원히 행복하세요

    2007/11/26 10:10
  13. 가이아나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사랑받기를 바라는마음 한쪽으로 전 제 사랑이 변해가는것을 감지하고 있었어요 남편에게 기대기만하는 저를 눈치 채면서 남편의 사랑이 예전만 못하다고 느꼈는데 어느날 문득 정말 어느날 문득 남편의 사랑보다는 내가 변했구나하는 생각이 들더군요. 이렇게 영원한 사랑을 약속한 혼인서약에서의 제 맹세가 희석이 되는것을 보면서 영원이라는말을 거부했는데 어머니의 글이 다시금 희망을 주시네요
    영원히 행복하세요

    2007/11/26 10:10
  14. albab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댓글 써 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를 드리며, 앞으로 자주 뵙게 되길 기대하겠습니다.

    모두 다 아름답고 착하신 분들이 댓글을 써주셨군요. 감사합니다.

    2007/11/26 12:01
  15. 80학번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전 80학번의 아줌마입니다. 어머니 글을 읽고 여기까지 오게 됬습니다. 그 당시엔 드물지만 이런 사랑이 있었죠. 요즘세대들은 무슨 소설같은 애기냐고 하지만... 행복하세요..^^

    2007/11/26 13:34
  16. JENNY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감동적인 글이네요. 어머니의 글을 보고 이 글까지 보게됐네요. 두 분다 크신 사랑이 대단합니다. 부럽습니다. 계속 행복하세요.

    2007/11/26 14:37
  17. 남미경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저와 동시대를 사셨네요.. 저는 창문여고 4회졸업 (1981) 대학다닐 때 대학로 생겼고.. 흠... 그때 친구들은 다 무얼할까?... 덕분에 저도 잠시 옛추억을 떠올려봅니다.. 나름 예쁜 사랑을 했었지요..

    2007/11/30 15: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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